'빅토리' 어느새 응원하게 되는 밀레니엄 걸즈의 매력 [시네마 프리뷰]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9년, 세기말 시대에 "거제가 좁다"고 말하는 필선을 필두로 오합지졸 10대 소녀들의 귀여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들이 뭉쳐 완성한 치어리딩은 엄청나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1990년대 명곡들과 어우러져 그 순수한 진심만큼은 확고하게 전달된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빅토리'(감독 박범수)는 1990년대의 향수와 치어리딩을 통한 열정과 응원을 느끼게 한다. 영화는 오직 열정만큼은 충만한 생판 초짜 치어리딩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가 신나는 댄스와 가요로 모두를 응원하는 이야기로, '싱글 인 서울'을 연출한 박범수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1999년 경남 거제를 배경으로 댄스 콤비인 필선(이혜리 분)과 미나(박세완 분)가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에 맞춰 펌프를 추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춤을 좋아한 나머지, 나이트에 갔다가 걸려 학교를 1년 더 다니게 됐지만 댄서가 되고 싶은 열망만큼은 굽히지 않는다. 이들은 마침 서울에서 치어리더를 하다 전학 온 세현(조아람 분)을 내세워 댄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치어리딩 동아리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교장은 만년 꼴찌인 거제상고 축구부가 응원을 받으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에 치어리딩 동아리를 허락한다. 나름의 오디션을 통해 9명을 모은 이들은 '밀레니엄 걸즈'라는 이름을 짓고, 축구부 우승을 위해 본격적인 치어리더 연습에 나선다. 하지만 댄서에 대한 열망이 컸던 필선은 힙합 댄스와 치어리딩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세현과 부딪히고, 미나가 치어리딩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치어리딩을 큰 줄기로 1990년도의 시대 상황도 담아낸다. 필선의 아빠 용우(현봉식 분)가 몸담은 거제 조선소는 당시 주말 근무와 추가 근무가 빈번한 상태였다. 결국 소희(최지수 분)의 아빠이자 용우의 동료가 과로로 사망하고, 노동 운동은 더욱 거세진다. 중간 관리자인 아빠는 경영진과 하청업체 직원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빠진다. 게다가 필선이 사고까지 치며 부녀지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처럼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밀레니엄 걸즈의 이야기와 번갈아 전개되는데, 극 말미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기 전까지 다소 산만해 보인다는 게 아쉽다.
대신 이 틈을 채우는 것은 음악의 힘이다. '빅토리'는 90년대 히트곡이 등장하는 신을 최대한 자르지 않고 보여주며 보고 듣는 즐거움을 더한다. 이에 영화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으로 완성됐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김원준, 터보, NRG 등의 노래에 맞춰 구슬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모습이 학창 시절 추억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밀레니엄 걸즈라는 팀으로 뭉친 만큼 배우들의 합이 돋보인다. 혜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필선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자신의 대표작 '응답하라 1988' 속 말괄량이 덕선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필선을 위해 혜리는 여러 장르의 댄스를 섭렵한 것은 물론, 경남 사투리를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 냈다. 박세완은 파격적인 외향으로 변신한 것은 물론, 소위 'K-장녀' 캐릭터를 잘 표현해냈다.
혜리, 박세완을 필두로 꾸려진 밀레니엄 걸즈의 신예들이 눈길을 끈다. '닥터 차정숙'에서 활약한 조아람은 이번 작품에서 도회적인 이미지로 연기력을 각인시킨다. 이외 최지수, 백하이(순정 역), 권유나(용순 역), 염지영(상미 역), 이한주(유리 역), 박효은(지혜 역) 등이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활약한다.
'빅토리'는 10대 특유의 감성이 극초반 잠시 오글거릴 순 있겠으나, 이내 필선과 미나의 진한 우정에 매료되는 영화다. 시작은 비록 미약했을지라도 어느샌가 진심이 되어버린 밀레니엄 걸즈의 모습에 절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밀레니엄 걸즈의 마지막 치어리딩 시퀀스가 응원과 뭉클함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다. "마냥 신나고 응원받을 수 있는 영화"라고 박범수 감독이 자신한 만큼,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응원이 담겼다. 러닝타임 119분. 14일 개봉.
seung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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