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광복절, 영화관에서라도…‘1923 간토대학살’·‘조선인 여공의 노래’

김은형 기자 2024. 8. 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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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를 두둔해온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고 독립운동가 단체들이 기념식 불참을 선언하는 등 광복절 79주년의 의미가 빛바랜 가운데 영화관에서나마 식민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볼 수 있다는 건 작은 위로다.

영화는 공식자료와 개인 일기, 보고서, 증언집 등을 찾아내며 당시 일본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진실을 은폐해 왔는지 당시 미국 신문과 정부 문서까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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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다룬 ‘1923 간토대학살’
일본에서 착취당한 여공의 삶 ‘조선인 여공의 노래’
다큐멘터리 ‘1923 간토대학살’. 영화특별시 SMC 제공

친일파를 두둔해온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에 임명되고 독립운동가 단체들이 기념식 불참을 선언하는 등 광복절 79주년의 의미가 빛바랜 가운데 영화관에서나마 식민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볼 수 있다는 건 작은 위로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발생했던 조선인 학살과 일본강점기에 일본으로 돈 벌러 갔던 어린 여공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2편이 관객과 만난다.

6661 대 233.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죽임을 당한 한국인으로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의 발표와 일본 정부가 각각 내놓은 숫자다. 이 괴리는 해방 이후에도 식민지 역사에 대한 인식 차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33이라는 숫자에는 단순히 축소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2017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간토대학살에 일본 정부가 관여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김태영·최규석 감독이 공동연출한 ‘1923 간토대학살’은 일본이 축소한 당시의 참상과 함께 일본 정부의 책임을 확인할 수 있는 일본 내 자료들을 공개한다. 김 감독은 한일 근대사진 수집가인 정성길씨가 보여준 한장의 사진, 당시 요코하마에 정박해있던 영국 해군이 찍은 처참한 학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영화를 기획하게 됐다.

4년 동안 일본 내 역사 연구가와 지워진 역사의 흔적을 찾는 시민운동가들을 만나고, 일본 방위성 군대 문서를 열람하면서 당시의 자료들을 찾아냈다. 연구자들은 3·1운동 등 조선인들의 독립운동 기세가 커지면서 일본 정부에 생긴 두려움이 관동대지진 후 사실상 민간 학살을 유도하는 정부발 유언비어로 나타났다고 증언한다. 영화는 지진 직후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이 각 지방 장관(도지사)에게 “지진을 이용해 조선인들이 각처에서 방화하며 불령한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낸 전보를 보여준다. 거짓말을 날조해 민간인들을 선동한 것이다.

당시에 조선인들을 체계적으로 나눠 산채로 불태워 죽이는 등 학살 현장을 본 사람들은 일기에 군인이나 경찰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남기기도 했다. 영화는 공식자료와 개인 일기, 보고서, 증언집 등을 찾아내며 당시 일본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진실을 은폐해 왔는지 당시 미국 신문과 정부 문서까지 공개한다. 15일 개봉.

다큐멘터리 ‘조선인 여공의 노래’. 시네마달 제공

지난 7일 개봉한 ‘조선인 여공의 노래’(이원식 감독)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에서 일했던 여공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1910년대부터 가난한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또는 부모를 따라 오사카행 배를 탔던 10~20대 여성들이 고된 노동을 하고 생활했던 방직 공장의 기억을 따라간다. 이제는 구순을 넘긴 증언자들의 증언과 함께 영화는 자료집 등에 남긴 여공들의 기억을 배우들이 낭독하는 방식으로 재현한다. 영화 ‘귀향’(2016)에 출연했던 재일교포 4세 강하나 등 당시 여공 또래 배우들이 참여해 22명의 목소리를 스크린에 실었다.

모진 노동과 비인간적 대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고통받는 삶이었지만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당시의 여공들을 시대의 희생자로 그리지 않는다. 먹을 게 없어 일본인들이 내다 버린 소·돼지의 내장을 먹으며 ‘돼지’라고 조롱받고 조선인 남성 관리자들의 단체인 ‘상애회’에게 이중의 착취를 당하면서 부당한 노동조건에 파업으로 맞섰던 조선 여공들의 강인하고 주체적인 삶은 일본 강점기 조선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한발 나아간 성취를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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