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보복’ 어떻게···4월보다 거센 공세? 신중한 수위 조절?

선명수 기자 2024. 8. 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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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거리에 이란, 팔레스타인 국기와 지난달 말 테헤란에서 암살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며 중동 지역 긴장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타격 전단을 중동에 급파하는 등 역내 군사력을 증강하면서도 영국·프랑스 등 서방 정상들과 함께 이란의 보복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자국 수도에서 벌어진 하마스 수장 암살에 대응하면서도 확전은 피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이란이 어떤 수위로 보복에 나설지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12일(현지시간) 이란이 이번주 중 이스라엘 공격을 단행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평가를 확인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스라엘에서 발표했듯 이란 혹은 그들의 대리인이 며칠 내 이스라엘을 공격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상당한 규모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최고 경계 태세…미국도 중동 전력 증강

보복 임박 관측에 힘이 실리며 이스라엘은 군 경계 태세를 한층 끌어 올렸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우리는 공격과 방어에 있어 최고 수준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지난 며칠간 방어를 강화하고 대응 공격 옵션을 만드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맹방 미국도 이란 공격에 대비해 중동지역에 군사력을 증강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전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54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핵추진 잠수함 USS 조지아의 중동 배치를 명령한 데 이어, 미군 구축함 USS 라분도 추가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F-35 전투기를 탑재한 에이브러햄링컨 항모 타격 전단도 중동에 급파된다.

한 때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 했던 이란의 보복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스라엘에선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자국민들에게 지하벙커에 식량과 물을 비축하라고 당부했고, 병원들은 환자를 지하 병동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들은 전시관에서 철거돼 지하 보호 창고로 옮겨졌다.

미국 정부가 중동지역에 급파한 공중조기경보기 E-2D호크아이와 에이브러햄링컨 핵추진 항공모함. 미 국방부 제공/로이터연합뉴스

확전 위험이 커지며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스라엘의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 피치는 “가자지구 분쟁이 2025년까지 지속될 수 있으며 (전쟁이) 다른 전선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등급 조정 이유를 설명했다. 역내 긴장 고조에 국제유가도 3~4%대 급등했다.

‘피의 보복’ 예고 뒤 열흘 넘게 시간 끈 이란…계산된 심리전? 대응 고심?

이란은 지난달 31일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되자 이스라엘을 암살 주체로 지목하고 ‘피의 보복’을 예고했으나, 이날까지 12일간 공격을 단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입장에선 이란의 예고된 공격에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번 셈이다.

그러나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이란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동시에 막대한 양의 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부으며 공격한다면 이스라엘의 방어 능력을 압도할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이란이 즉각적인 보복에 나서지 않고 열흘 넘게 시간을 끈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억제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확전을 막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이란은 지난 4월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하자 12일 만인 같은 달 13일 이스라엘 영토를 공격했는데, 이스라엘은 미국의 도움으로 이란이 쏜 미사일과 드론의 99%를 격추했다.

전쟁연구소는 “이란 지도자들은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이스라엘에 대한 억제력을 회복해 확전을 유발하지 않도록 신중하고 천천히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란은 또 공격을 늦추며 이스라엘 내부의 두려움과 불안을 조장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짚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공격 지연이 ‘의도된 심리전’이라고 짚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의 장례식을 인도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실 제공/AP연합뉴스

이란이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보복’을 천명하면서도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여전히 대응 수위를 고심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면전은 이란을 국제사회에서 더욱 고립시키고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취임한 개혁 성향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과 경제제재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이 헤즈볼라 등 대리세력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했으며, ‘무력 과시’와 ‘전면전 방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WP는 “지난 4월 이스라엘과 이란의 첫 직접 대결로 오랫동안 두 국가의 그림자 전쟁을 억제해온 레드라인이 지워졌다”면서 “이란이 국내 정치적으로 더 불안정해졌고, 이스라엘의 자제력에 대한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균형점을 찾기 더 어려워졌다”고 짚었다.

헤즈볼라와 가까운 한 이라크 소식통은 이란이 확전을 피하기 위해 보복에 나서더라도 ‘제한적인 수준’의 공격만 할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FT 역시 이란은 미국과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확전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를 지낸 아흐마드 다스트말치안은 “네타냐후는 중동을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끌어들이려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며, (이란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반드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이란에 보복 자제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정상과 통화해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이후 5개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발표해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위협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도 잇따라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통화해 공격 자제를 주문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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