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있었던,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사랑이란 ‘환상통’은 어떻게 상실이 떠난 자리의 부재(不在)를 껴안았을까

제주방송 김지훈 2024. 8. 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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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진·고혜령·장수영 작가 3인 전시
26일~9월 7일.. 제주시 ‘돌담갤러리’
파스텔화, 소묘, 사진 콜라주·드로잉
송유진 作 ‘0’ (56.0x76.0㎝, 종이에 애니메이션 색연필, 2024)


# 삶의 곳곳에 숨어있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느닷없이, 혹은 서서히 다가오는 상실의 순간들은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고, 그 자리에는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남습니다.

맞물리는 부재(不在)는 단순한 결핍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과 기억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실존적 경험이라 말합니다.

사랑했던 대상이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때, 부재를 통해 대상이 존재 일부로 남아 있음을 인식합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슬픔을 넘어, 존재의 본질과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철학적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부재의 공간에서 어떻게 사랑과 존재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지, 상실의 순간을 슬픔만이 아닌 치유와 사랑의 여정으로 그렸습니다.


장수영 作 ‘있었다’ (57.5x77.0㎝, 종이 위에 소프트파스텔, 2024)


26일부터 제주시 돌담갤러리에서 여는 ‘있었다’ 전입니다.

송유진, 고혜령, 장수영 작가 3인이 구성한 프로젝트 그룹 ‘솔찍히’가 ‘명상’, ‘성장’, ‘치유’ 등을 키워드로 각각의 상실의 경험을 파스텔화(장수영), 소묘(송유진), 사진 콜라주·드로잉(고혜령)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했습니다.

‘솔찍히’는 글자 그대로 ‘솔직한 글과 그림을 지향하는’ 여성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이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진실이 우리 모두를 연결하는 힘이 된다고 믿으며, 정체성을 더 단단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라면서 “한 주제에 따른 3인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기록의 형태로,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한 작업의 결과물들”이라고 전시를 소개합니다.

고혜령 作 ‘과정 중’ (24.0×16.0㎝ 40ea, mixed media on paper, 2024)



■ “있었던 것과 여전히 존재하는 것”.. 상실, 사랑, 부재의 미학

송유진 작가는 자신의 일상에서 사라져가는 작은 죽음들과 부재를 기록하며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상실을 마주합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존재는 종종 간과하기 쉽지만, 상실과 죽음을 마주할 때 비로소 존재의 본질은 더 명확히 인식선상에 자신을 뚜렷하게 각인시킵니다.
작품 ‘공(空) 프로젝트’는 매일 일상에 느끼는 사라짐의 순간들을 기록하며 이런 철학적 인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매일의 식사를 통해 사라져가는 일상의 흔적을 기록하고, 그 부재의 공간에서 존재의 흔적을 다시 찾습니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일상의 작은 상실을 통해서 존재의 본질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쫓아가는 사유의 과정입니다.

송유진 作 ‘소울푸드1’ (21.0x29.7㎝, 트레이싱지에 애니메이션 색연필, 2024)



사랑하는 사람의 순간을 사진 콜라주와 연필 드로잉에 담아내는 고혜령 작가는, 순간의 포착과 찰나의 상실을 다룹니다.
사실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 즉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붙잡아 두려는 시도 속에 사진이란, 순간을 영원으로 고정하는 매체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사진은 오히려 부재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증거가 됩니다.  과거의 순간을 현재로 소환하면서도, 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작가의 작업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현존재(現存在, DaseinDasein)를 소환합니다. 일종의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안에 ’있음‘으로써,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됩니다. 사진·드로잉은 현존재의 과정, 즉 순간과 영원의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부재와 존재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합니다.

고혜령 作 ‘뭐보는겨’ (32.0x24.0㎝, mixed media on paper, 2024)



장수영 작가는 ‘문지르며 흘려보내며’ 상실과 슬픔을 치유의 여정으로 승화시킵니다. 상실의 감정은 ‘검정’으로 표현되지만 그저 어둠만은 아닌 유채색을 품은 ‘가능성’으로 읽힙니다. 상실을 극복하는 게 아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경계를 찾아갑니다.
3원색이 겹치고 섞이는 과정은 부재 속에 태어나는 존재의 변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이런 작업은 흡사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解體. deconstruction)와 닮았습니다. 모든 의미와 존재는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아 부재와 결핍을 통해 또 다른 의미망으로 탈피를 거듭합니다.
작가는 해체의 과정을 헤집고, 끊임없이 존재의 가능성에 물음을 던집니다.

장수영 作 ‘없다,있다’ (90.9x65.1㎝, 종이 위에 소프트파스텔, 2024)



■ “있었다” 그리고 “없다” 사이.. 상실의 의미의 재구성

이소영 미술평론가는 전시 서문(‘상실과 부재의 환상통’)에서 작가들이 환기하는 (상실의) 고통 혹은 통증에 대해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자리, 즉 ‘부재’에 대한 상상적이면서도 매우 실재적이고 감각적인 고통”이라며 “‘있었다’를 상기하는 것은 사랑이 끊어진 자리를 계속해 확인하는 것이므로 늘 아쉽고 애틋하다”라고 분석합니다.

‘부재’의 공간을 단순한 공백이 아닌, 그 대상이 나와 어떠한 관계로 얽혀져 있었는지를 되새기는 장소로 해석하면서도, 이런 부재의 공간을 재조명하는 것이 바로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 짚었습니다.

‘상실’과 같은, 실재하지 않지만 느끼는 고통은 ‘머묾’이 아닌 진행형으로서 ‘부단한 애씀’이자 ‘확인’이라면서 연속성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이 평론가는 “(전시는) 재회가 불가능해진 모든 이별의 순간을 포함한다. 누구나 경험했고 경험할 수 있는, 현재 진행 중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때의 추상성은 더 이상 무형의 개념이나 감정이 아닌(…) 실재하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있었다’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이라고 확언합니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제주시 중앙로 ‘돌담갤러리’에서, 관람은 전시 기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합니다. 보다 자세한 문의는 인스타그램 계정(@cok_see_ok/)으로 하면 됩니다.



일상을 관찰하며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공간 또는 사물을 통해 재조합해 표현해 온 송유진 작가는 2016년 미국 뉴저지에서 첫 개인전(AC 아트 갤러리, 미국)을 시작으로 ‘판타지 인 제주’(켄싱턴 제주 호텔, 제주, 2019) 등을 개최했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스튜디오126, 제주, 2021), ‘YCK 2018’(아라아트센터, 제주, 2018), ‘SUPER META POST BORDERS’(oMo 아트스페이스, 독일, 2019), ‘가상의 점’(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제주, 2023) 등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혜령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는 순간의 모습들을 주로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연 갤러리, 제주, 2016), ‘조천…길 위에서’(켄싱턴 호텔갤러리, 제주 2017), ‘두 번째 이야기,사랑하는 엄마’(휴애리 갤러리 팡, 제주, 2018), ‘우연히 본 풍경’(돌하르방 미술관, 제주, 2022), ‘Fluffy’(갤러리 둘하나, 제주, 2023) 등 개인전을 갖고 ‘제8회 아트페스타인제주 LOOP:HARMONY’(산지천갤러리, 제주, 2023), ‘spring,spring!’(김만덕기념관, 제주, 2013) 등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제7회 신친청년작가(2016)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RUB AND FLOW(파스텔을 문지르며 감정을 흘려보내기)’를 작업 방식으로 택해 색과 질료 안에서 본질을 탐구해 온 장수영 작가는 ‘Rub and Flow, 사춘기’(제주갤러리 더 몹시, 2018), ‘Rub and Flow, 동그라미’(art cafe_grin, 대구, 2020) 등 개인전을 비롯해 ‘INNER PEACE’(제주갤러리 다리, 2017) 등 다수 단체전과 대구에서 아트북 작업과 전시 등을 이어갔습니다. ‘고월古月’, ‘RUB AND FLOW’, ‘꽃마리’ 아트북도 발간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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