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협에 군비 증강하는 세계 각국...한국의 차세대 구축함 사업은? [무기로 읽는 세상]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대만 불안이 심화되면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군비 경쟁은 과열을 넘어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심화하고 있다. 국가 예산 운영은 중·장기적 계획의 틀 안에서 집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 각국의 군비 증강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에 없던 무기체계들을 대량으로 추가 도입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를 위해 당해 연도 예산에 추가경정예산으로 무기 구입비를 집어넣고, 다음 해 예산안에 신규 무기 도입 계획을 대거 반영해 무기 구매 예산을 당해 대비 수십 퍼센트 이상 증액하는 사례들이 각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 움직임은 각국 정부가 현재의 국제정세를 매우 위중하게 보고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 큰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다.
안보 위협에 경쟁적으로 군비 증강하는 세계 각국
러시아발 안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독일은 올 상반기 계획에 없던 대규모 무기 구매 결정을 내렸다. 20억 유로를 추가 집행해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20대를 신규 구매하고, 당초 4척만 건조할 계획이었던 1만 톤급 호위함 F126형 2척을 추가 발주했다. 이 호위함 1척의 가격은 무려 13억7,000만 유로, 약 2조 원이다. 이와 별개로 1척에 14억6,000만 유로(약 2조1,000억 원)에 육박하는 U212CD 잠수함도 2021년에 계약한 2척에 더해 무려 4척을 추가 발주하기로 했다. 최근 석 달 사이 해군에만 12조 원의 추가 무기 구매 예산이 배정됐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미국 진영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일본 역시 최근 건함 사업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며 해군력 증강에 나섰다. 지난해 이른바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이라는 기준배수량 1만2,000톤급의 대형 전투함 2척 도입을 확정했고, 당초 5,500톤급 덩치의 2선급 호위함 도입 사업이었던 모가미급 호위함 사업을 대폭 수정했다. 기존형 모가미급은 12척만 도입하고, 배수량을 1,000톤 이상 확장해 중무장·고성능화한 개량형 10척을 추가 도입한다는 것이다.
최근 1년 사이 대규모 추가 건함 사업을 발표하거나 기존 군함들의 성능 개량 사업을 실시하는 등 해군력의 대대적 증강 계획을 밝힌 나라들은 독일과 일본만이 아니다. 태평양 지역에서는 캐나다·호주·필리핀·싱가포르·인도네시아·대만 등이 대대적인 해군력 증강 사업을 진행 중이고, 유럽에서도 폴란드·이탈리아·스페인·튀르키예·그리스 등이 연이어 군함 도입 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모두 중국·러시아발 해양안보위협에 대응하고, 올해 11월 미국 백악관의 주인이 바뀔 경우 미국이 전 세계 바다에서 자국 군함을 불러들일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다. 외부 위협에 맞서 주권 수역과 해상교통로를 보호하지 못할 경우 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온다는 것을 각국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과거의 해군력 확장 계획에만 머물러 있어
그러나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달라진 국제정세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거의 모든 나라가 경쟁적으로 해군력 확장에 나섰지만, 우리의 건함 계획은 변화 조짐이 없다. 12년 전에 수립한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확정된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 도입 계획도, 기존 노후 호위함·초계함 대체를 위해 26척의 신형 호위함을 단계적으로 건조한다는 20년 전 계획도 그대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적용되는 장비의 성능이 최초 계획과 조금씩 달라졌을 뿐, 군함의 수를 늘리거나 이를 위해 해군 전체 정원을 증원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가 무역으로 먹고사는 해양국가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심지어 신형 전투함 도입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군 당국의 깔끔하지 못한 업무 처리로 양대 조선사가 법적 분쟁을 벌이며 사업 지연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 일명 KDDX 사업에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경쟁을 넘어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이 HD현대중공업을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하자,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이 KDDX 관련 기밀을 불법으로 취득한 사건을 빌미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기각당했다.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되면 방위사업관리규정에 따라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계속사업으로 수행할 수 있고, 이후 후속함 건조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점하게 된다. 한화오션 측에서는 8조 원에 달하는 KDDX 사업을 HD현대중공업에 고스란히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화오션은 이를 뒤집기 위해 기밀유출 사건 당시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사건에 개입한 정황을 수사해달라며 경찰에 HD현대중공업을 고발했다. 이 사건이 경찰·검찰을 거쳐 법정 다툼까지 갈 경우, 사업자 선정은 물론 건함 일정 자체가 크게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남들은 계획에 없던 군함 물량까지 만들어내며 경쟁적으로 해군력을 팽창시키는 시기에, 우리나라는 해군력 확장은 고사하고 기존에 수립했던 건함 일정까지 밀릴 판이라는 것이다.
차기 구축함 사업 두고 조선업체 간 진흙탕 싸움도
이는 우리 안보에도 좋지 않고, K방산 외연 확장에도 불리하다. 현재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약 10조 원 규모의 호주해군 신형 호위함 사업에도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4개국이 경쟁 중인 이 사업에서 그동안은 한국과 일본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최근 일본 쪽으로 급격히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미쓰이중공업이 ‘원팀’을 꾸려 수주 물량을 나눠 갖기로 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조선사들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호위함 사업은 그 자체로도 사업 규모가 매우 크지만, 내년부터 시작되는 캐나다·폴란드의 신형 호위함 도입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이 중차대한 승부를 앞두고 국내 조선업계가 서로 물고 뜯는 이 같은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안보 환경에 대비하고, 해양국가인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하며,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K방산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제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 정부가 두 기업이 수긍할 만한 ‘당근’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양 사가 ‘방산보국’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기업이 수긍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당근은 전체 건함 사업의 규모를 크게 늘리고, 이를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안보 강화, 해양 주권 수호,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익 목적에도 부합한다. 다른 나라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기존 건함 계획을 2~3배 확장한 것처럼 KDDX 사업 규모를 키우고, 이와 별개로 2030년대 중반 착수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대체 사업 일정을 크게 앞당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실행 방안이다.
구축함 사업 규모 늘려 적절히 분배하고, 해군 정원도 늘려야
다른 나라처럼 군함 도입 수량을 단번에 2~3배 이상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6척으로 계획된 기존 9,000톤급 KDDX 사업 규모를 9척 이상으로 늘려 양대 조선사에 적절하게 물량을 분배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최근 한화오션이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대체용으로 제안하고 있는 7,000톤급 KDDX-S 역시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2020년대에 조기 착수하는 방안도 추진돼야 한다.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은 오랫동안 계속된 청해부대 작전으로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이고, 최근 주변국들이 대형화·고성능화된 전투함들을 대폭 증강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사업 조기 착수의 명분도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건함 사업 확대와 더불어 3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는 해군 정원 개선 문제도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 이미 소요 대비 3,000명 이상 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군함만 늘려봤자 그 군함을 운용할 승조원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군 혼자서는 풀 수 없는 과제다.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나서야 하는 문제다. 430여 년 전, 전운(戰雲)을 본 이순신 장군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판옥선과 거북선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이순신 장군 같은 생각을 갖고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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