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높았는데 왜? 방글라데시 봉기와 양극화란 불씨
방글라데시 정권 붕괴 경제적 함의➊
공무원 할당제에 분노한 청년들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의 간극
GDP 세계 32위로 급성장했지만
불평등 지수는 오히려 악화일로
방글라데시는 세계경제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다. 이 나라는 지난 20년간 연평균 6% 이상 성장해 지난해 세계 32위 경제 대국에 올라섰다. 문제는 '분배 없는 성장'이었다. 방글라데시 집권세력은 '경제성장'이라는 달콤한 실적을 뽐내왔지만, 방글라데시 경제는 속으로 곪아갔고 끝내 정권 붕괴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더스쿠프가 방글라데시 정권 붕괴에 숨은 경제적 함의를 1편과 2편에 걸쳐 취재했다.
지난 5일 직職을 내놓고 인도로 도피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전 총리와 집권세력 아와미연맹은 적어도 2026년까진 자신들의 자리가 튼튼하리라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수십년간 지속해온 '분배 없는 성장'에 덧붙여 부자감세, 서민증세(간접세 증세), 법인세 감세를 강행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6% 이상 성장한 방글라데시는 유엔 산하 경제사회이사회가 3년마다 갱신하는 최빈국 리스트에서 2026년 빠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왜 민중은 봉기를 일으키면서 하시나 정권을 밀어낸 걸까. 그 이유를 하나씩 찾아가보자.
■ 붕괴 과정=정권의 붕괴를 촉발한 건 공무원 채용 할당제다. 1972년 파키스탄에서 독립한 직후 생긴 이 제도의 골자는 공무원 일자리 80%를 참전용사 등에게 할당하는 것이다. 하시나 전 총리의 아버지이자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이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 직접 시행했다. 방글라데시 싱크탱크인 정책대화센터(Centre for Policy Dialogue‧CPD)에 따르면 전체 공무원 수는 120만명 수준이다.
하시나 전 총리는 2018년 이 할당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 시위에 밀렸지만, '할당량 취소'란 꼼수로 위기를 모면했다. 당시 시위대는 할당량의 폐지가 아닌 공무원 채용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하시나 전 총리가 4선에 성공한 지(2024년 1월) 5개월 후인 6월 고등법원은 "2018년 정부의 할당제 취소 통보는 불법"이라며 전체 공공부문 일자리의 56%를 독립유공자의 후손, 여성‧소수민족에게 분배하는 할당제를 부활시켰다.
그러자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고, 능력에 따른 공정한 채용을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대가 다시 등장했다. 지난 7월 16일 대학생 아부 사예드가 경찰 두명이 15m 앞에서 쏜 산탄총에 맞아 사망하고,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자 대학생 시위는 시민들의 정권 퇴진 봉기로 번졌다.
정부는 통금을 실시하고 인터넷 회선을 차단했다. 불과 열흘 만에 사망자 수는 200명을 넘겼다. 방글라데시 대법원이 7월 21일 이 할당 비율을 7%로 낮추는 판결을 내놨지만, 시위대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왜 공무원 할당제가 이렇게까지 민감한 문제가 됐을까. 방글라데시의 기형적으로 높은 청년 실업률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이 나라 실업률은 2023년 4분기 기준 3.2%로 낮은 수준이지만, 15~29세 청년 실업률은 83.0%에 달한다. 2022년 대학 졸업자의 28.0%가 실업 상태다. 대졸자의 20.0%는 1년 이상 구직활동을 이어갔고, 2년 이상 구직활동을 한 비율도 15.0%였다.
■ 성장의 그늘=궁금한 건 또 있다. 하시나 정권이 20여년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궜는데, 왜 붕괴를 피하지 못했느냐다. 먼저 그들의 경제 성적표를 따져보자. 방글라데시는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4374억1500만 달러로 세계 32위였다.
방글라데시 GDP는 2022년 7.1%, 2023년 5.8% 증가했다. 20년간 연평균은 6% 이상, 최근 10년간은 연평균 7% 이상 성장했다. 지난 30년 동안 역성장한 적도 없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방글라데시 경제가 6.1% 성장해 아시아에서 인도(7.0%)에 이어 두번째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무역, 특히 섬유산업이 성장을 이끌었다. 방글라데시의 2022~2023 회계연도 수출의 84.5%, GDP의 13% 이상이 섬유산업에서 창출됐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봉제 등 섬유 관련 매출은 사상 최고인 473억8000만 달러였다. .
문제는 이같은 수출의 온기溫氣가 민생으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2018년 '왜 방글라데시 경제성장이 빠를까?'라는 보고서에서 "한 나라 경제가 성장하면 부패, 정실주의, 부의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방치하면 성장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시나 정권의 수출 위주 성장 전략은 세계적으로 최악에 가까운 부의 불평등을 구축했다. 방글라데시개발연구소(BIDS)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가까운 1640만명이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2015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상위 5% 소득은 하위 5%보다 121배나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시나 정권이 신뢰를 잃는 데 결정타를 먹인 건 '부의 탐욕'이었다. 경제는 '양극화'의 늪에 빠졌지만, 하시나 정권은 어찌 된 영문인지 부자감세와 서민증세, 법인세 인하를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올해부터 방글라데시의 재산세 공제 구간은 기존 3억 타카(약 33억원)에서 4억 타카(약 44억원)로 높아졌다. 재산이 4억 타카가 넘더라도 1년간 소득이 없었다면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해 재산세 부과 대상을 축소했다.
재산세를 안 내는 부유층이 늘어났는데, 방글라데시 재무부는 지난 6월 비상장 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27.5%에서 25.0%로, 1인 회사의 최고 법인세율은 22.5%에서 20.0%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방글라데시는 '낙수효과'를 꾀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제는 더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양극화'에 더 큰 불씨를 제공한 하시나 정권의 이상한 경제정책은 2편에서 이어나가보자.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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