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년 안에 지었는데… 용인 클러스터, 터파는데만 4년 허비[대한민국 ABC가 위험하다]

김성훈 기자 2024. 8. 1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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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ABC가 위험하다 - <下> 반도체
SK·삼성 반도체 건설 현장
환경평가·민원 등 난제 수두룩
토지보상단계부터 거북이 걸음
日, TSMC 신공장 계획 나오자
빠른 인허가로 6개월만에 착공
반도체 공장 부지 ‘허허벌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각종 규제와 인허가 문제로 인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삼성전자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에 낡은 농기계가 방치돼 있다. 문호남 기자

용인=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지난 8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 조성을 위해 축구장 580여 개 규모와 맞먹는 416만㎡ 크기의 주변 야산을 통째로 헐어낸 이곳은 한창 땅 고르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SK하이닉스는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9년 약 120조 원을 들여 해당 부지에 반도체 공장 4개를 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토지 보상 문제를 비롯해 각종 지역 민원과 산업용수 공급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등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인허가 문제로 수차례 착공이 연기돼 지난해 초에야 겨우 첫 삽을 떴다. 터파기 작업을 진행하기까지 4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한 셈이다.

원삼면에서 직선거리로 15㎞ 떨어진 남사·이동읍 일대 728만㎡ 부지 규모의 삼성전자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도 이처럼 ‘거북이걸음’ 전철을 밟게 될 조짐이 일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곳 부지에 약 360조 원을 들여 6개 반도체 팹(공장)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남사읍 창3리 마을 입구로 이어진 100m가량 편도 1차로 크기 좁은 폭의 도로 가에는 사업을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들이 일렬횡대로 내걸려 있었다. 옆 동네 이동읍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은 ‘원주민 몰아내는 강제수용 결사반대’ ‘국가산단 철회하라, 목숨 걸고 반대한다’ ‘삼성만을 위한 산업단지, 주민들은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쏟아내며 개발에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다.

관련 업계에선 토지 보상 문제 해결을 가장 큰 변수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클러스터 부지의 약 90%인 650만㎡는 사유지에 해당한다. 단독주택 216개, 공동주택 9개, 공장 108개가 들어서 있다. 이곳 토지 수용 문제는 당사자 간 협의를 우선으로 해 분쟁 발생 시 가격 조정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성에 상당한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원주민들과 토지보상 사전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의견 차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이동읍 주민센터에서 열기로 한 설명회도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LH 등에 따르면, 산단 계획 승인 신청이 접수된 현재 주민 의견 청취, 관계부서 협의 등 각종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며 완료 시점은 내년으로 잡혀 있다. 토지 보상 작업은 그 이후에야 착수된다. 삼성전자 클러스터는 오는 2025년 착공해 준공 시점이 2031년으로 계획돼 있다. 반도체 단지 조성에 통상 소요되는 ‘7년’을 꽉 채운 셈이다. 앞서 경기 평택시 반도체 공장의 송전선로 설치에만 5년을 허비했던 삼성전자 안팎에선 벌써 유사한 시련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문중 묘지 이장 설득 과정만 1년 이상 걸린다”며 “실제 계획보다 기간이 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반도체 산업은 시간이 곧 보조금”이라고 역설하면서 용인 클러스터 구축 관련 인허가 절차를 대폭 줄여 착공 기간을 3년 6개월로 반절 이상 단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정부 기조에 맞춰 지난 7월 여당이 ‘인허가 패스트트랙’ 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산업 발전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여야 정쟁이 격화되면서 심사조차 진행되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 문제를 앞세워 국정 기조 전환을 주장, ‘대치 국면’이 재차 조성되면서 국가 경쟁력이 또다시 정치권에 발목을 잡힐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과 달리 지난 2월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기쿠요마치에선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선두 업체인 대만의 TSMC가 86억 달러(약 11조8869억 원)를 들여 세운 반도체 공장 개소식이 열렸다. 2021년 10월 신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3년도 안 돼 준공됐다. 일본은 반도체 업체가 신공장을 빨리 지을 때 발생하는 직·간접적 경제 효과를 겨냥, 부지 조성 문제 등 인허가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고 6개월 만에 착공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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