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라떼는’→‘너만 힘드냐’…중국만 반기는 방수현표 꼰대3종세트

서다은 2024. 8. 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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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 금메달을 딴 안세영이 28년 전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방수현과 만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대표팀 선수로 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나. 안세영만 힘든 게 아니다. 모든 선수들이 그런 환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나도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들어가 그 시간들을 다 겪었다. 대표팀을 누가 등 떠밀어서 들어간 게 아니지 않나”

‘배드민턴 레전드의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인내의 시간, 그 모든 걸 이겨내고 따낸 금메달의 무게. 그리고 체육계 부조리에 익숙해져야만 국가대표 타이틀을 달 수 있는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어른’의 모습이다. 오래된 관행에 반기를 들거나 ‘윗분’들의 눈 밖에 나면 나고 자란 국가를 대표해서 뛸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는 현실은 안세영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중국만 반기는 ‘누칼협’ 어법

28년 만의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 결승 직후 안세영(22)을 직접 축하하러 찾아간 방수현(51)은 ‘안세영 시대’를 선언했다. 다정한 모습도 잠시. 대선배는 날 선 훈계를 내놨다. 방수현은 안세영의 폭로에 대해 7일 YTN과의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혼자 금메달을 일궈낸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협회의 시스템이 조금 변화되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감독, 코치, 후보 선수들의 수고에 대해 먼저 감사를 표했어야 한다”고 일침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배드민턴 협회나 방수현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선수 입에서 ‘더는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안세영이 지난 5일 오후(한국시간)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금메달을 확정 지은 후 태극기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파리=뉴스1
 
9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재차 안세영의 태도를 지적했다. 방수현은 “협회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안세영에게 개인 트레이너를 허용했다. 안세영의 몸 상태 회복을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황을 세밀하게 살필수록 협회가 안세영을 얼마나 특별케어했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세영이 볼멘 소리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것. 이와 함께 ‘누가 국가대표 하라고 등 떠밀었냐’, ‘안세영만 힘든 게 아니다’, ‘나도 국가대표로 그 힘든 시간을 다 겪었다’는 주옥 같은 말들을 내놨다. 이 세 가지는 배드민턴협회와 스포츠계를 넘어 한국사회를 아우르는 견고한 ‘기성세대’ 의식체계를 상징한다.

‘국가 대표 시스템이 그렇게 싫으면 안 하면 된다’는 얘기. 그 말대로 안세영은 대표팀을 떠나 개인자격으로 배드민턴을 하고 싶다는 바람까지 드러냈다. 대한민국 배드민턴계에 부는 칼바람에 은근한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은 중국이다. 대한민국 대표로 뛸 수 없다면 중국 대표로 뛰라며 언론과 누리꾼이 나서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중국 매체 현재 ‘써우후’는 안세영 같은 선수는 ‘아주 귀하고 드물게 가치 있는 사람이라 국가적으로 소중한 자산’이라며 경기력 뿐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건강까지 중요한 관리대상이라고 평가했다. ‘귀화도 좋은 선택’이라며 직접적으로 야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세영 개인 행동이 문제?…변화·대화 대신 선수만 나무라는 어른들

의견 자체를 묵살할 때 쓰이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의 논리적 오류는 체육계 부조리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라틴어로 Ergo Decedo(그러면 떠나라)라고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유명 일화처럼 복잡하게 묶인 매듭을 푸는 대신 잘라버리는 것으로, ‘논점 포기의 오류’라고도 불린다. 문제 상황을 건설적으로 풀어가는 대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를 찍어내는 이런 화법은 이기흥(69) 대한체육회장도 쓰고 있다. ‘여태까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한 적 없다’→‘그러니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는 식의 논리다. 고착된 시스템의 수혜자들이 전형적으로 좋아하는 화법이라 할 수 있다.

서울 송파구 대한체육회 내 대한배드민턴협회. 대한체육회가 안세영의 문제 제기와 관련해 배드민턴협회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가운데, 문제 제기만으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방수현 MBC 해설위원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비판도 일어나고 있다. 뉴스1
 
안세영의 직격 발언 이후 배드민턴협회의 불합리한 운영 방식이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2월 협회가 추가한 ‘큰 협회‧지도자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국가대표 자격을 정지시킨다’는 세부 규칙이다.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을 겨냥한 조항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선수는 조직과 지도자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고 명시, 인권 침해적 요소가 다분한 조항이기 때문. 더 큰 문제는 이런 조항이 가능하도록 만든 분위기가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선수 이탈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방수현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배드민턴협회의 이런 구시대적 발상에 대한 지적은 없이 ‘안세영이 잘못했다’, ‘안세영이 경솔하다’는 발언만 내놨다. 배드민턴·스포츠계 어른들이 앞 다퉈서 안세영을 때리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안세영이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뛰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 이는 비단 안세영이나 배드민턴계의 문제만이 아니다. 안세영 이탈이 현실화된다면 ‘청년의 조직 이탈’이 사회 현상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또 다른 상처를 남길 것이다. 28년 전엔 옳았어도 지금은 바뀌어야 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고, 바뀌고 있다. 꼬인 매듭을 풀려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선수 출신 방수현이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누칼협) 화법 대신 중간자적 입장에서 양쪽의 이야기를 전했다면 어땠을까. 부동의 세계1위 안세영에겐 그를 품을 만한 그릇을 가진 ‘어른’이 없어보인다. 대한민국에 남는다면 (경기 외적인) 도전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중국 매체의 예언이 현실화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안세영이 ‘합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단체’를 앞세우는 대신 선수의 실력과 시대 변화에 걸맞은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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