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 비웃는 중국, 세계시장 점유율·위상 더 올라갔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8. 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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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압박에 자급자족 산업 생태계로 대응…효율성과 관계 없이 자본·인력 쏟아부어 
제3세계 국가에 독자적 공급망 구축…中 중간재, 갈수록 영향력 확대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18년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했다. 중국의 과도한 대미 무역흑자를 감축시키겠다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조치였다. 일반적인 통상 관계를 무시한 일방적인 조치였지만 국제사회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 감축 조치가 나오고 미국도 관세 인하에 나설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당초 수개월 진행될 것으로 여겨지던 미·중 갈등은 계속됐으며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무역수지를 둘러싼 미·중 갈등은 2019년을 전후해 그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화웨이로 대표되는 중국의 5G 네트워크 제품의 세계시장 장악을 미국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에 자국은 물론 우방국에 대해서도 중국 제품에 대한 철거를 요구했다. 중국을 저렴한 제품을 팔아 이익을 내는 국가에서 미국의 안보와 미래 경쟁력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다.

급속히 성장하던 중국 제조업에 대해 미국은 오랫동안 미국 기업의 손발이 되어주며 비용을 절감해 주는 파트너로 여겨왔지만 미국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첨단화, 고부가가치화의 길을 걷게 되면서 본격적인 견제와 억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냉전 이후 폐기됐던 경제안보 개념을 도입하면서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 접근 자체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3년 11월15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

美, 기술 접근 차단…자생력 키운 중국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중국 첨단산업의 기술적 성장을 본격적으로 억제하기 시작했다. 이차전지, 반도체, 차세대통신, 인공지능, 바이오의약품, 양자컴퓨터 등 6개 분야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국으로의 기술 유입을 차단하고 미국에 관련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2022년 이슈였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2023년 반도체법(CHIPs)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었다. 특히 미국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고 파급력이 큰 반도체에 견제가 집중됐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및 소재에 대한 차단에 나서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던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큰 위기를 겪게 됐다.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맞서 중국은 우선 자급자족적인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원료 수급부터 재활용에 이르는 전 단계를 중국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태양광 패널과 이차전지 분야에서 성과로 나타났다.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이들 품목은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면서 세계시장을 장악했고, 그렇게 확보한 자본으로 기술 개발 및 생산량 확대에 나서면서 중국 기업 없이는 해당 산업이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으로 인한 중국 내 문제가 발생했지만 중국 정부는 비용을 감내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중국은 오히려 공세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의 2023년 해외 직접투자는 16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대규모 해외투자를 통해 독자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의 투자는 '글로벌 사우스'라고 부르는 제3세계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2년을 전후해 중국의 수출에서 미국·EU·일본 등 선진국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영한다. 50억 명에 이르는 글로벌 사우스의 인구를 고려해볼 때 중국 기업의 전략은 과거 중국이 성장할 때 필요로 했던 것을 공급함으로써 거대한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커지는 中 경제영토…제3세계 시장 석권

과거 미국 및 유럽의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동남아·아프리카 시장은 중국 기업의 몫으로 넘어가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트랜션은 에티오피아에 공장을 건설하고 100달러 미만의 저렴한 라인업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구매하는 전체 스마트폰의 50%를 생산하고 있다. 의료기기 업체인 마인드레이는 중남미 의료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중국의 패스트패션 업체 셰인은 저렴하면서도 트렌디한 제품을 선보이면서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서 중국 기업의 매출은 일본 기업을 앞질렀다. 2030년 이전에 유럽 다국적 기업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확대는 미국의 각종 제재와 진입장벽을 회피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2012년 미국의 반덤핑관세로 판로가 막힌 중국의 태양광 패널은 동남아 국가에서 최종 조립되면서 미국에 진출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BYD는 동남아를 넘어 최근 모로코, 터키 등에도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국의 중간재는 세계시장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 첨단 제조업의 경우 국가와 민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자생적 기술 개발로 제재를 돌파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과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지만 수익과 관계없이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자하고 생산된 결과물이 판매될 수 있도록 시장을 형성하는 중국의 전략은 최근 반도체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창신메모리(CXMT)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개발을 마치고 월 5만 장 규모의 12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고성능 메모리인 HBM에 대한 수출을 통제할 움직임을 보이자 빠르게 대응하면서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힘겨워하던 많은 국내 기업은 미국의 대중 제재를 통해 한숨 돌리게 됐으며, 중국 기업의 진출이 봉쇄된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집중하면서 정작 더 넓은 세계시장의 점유율 확보 및 신규 시장 개척은 소홀한 상태다. 글로벌 사우스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중국 기업의 대규모 해외투자 및 현지생산 흐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더불어 필요할 경우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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