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해 뛰고 싶었지만…" 그날 그 시상식에 정체불명의 연주곡이 흘렀던 이유는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8. 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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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사랑의 찬가'부터 '한 페이지'까지…파리 올림픽을 달군 음악들 (글 : 임희윤 음악평론가)
 

DAY6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M/V
[ https://youtu.be/vnS_jn2uibs ]


7일 저녁(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전을 앞두고 한 남자가 팔레의 계단을, 두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한국 대표팀 박태준 선수입니다. 그는 잠시 후,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를 꺾고 이 체급 최초의 금메달을 한국의 품에 안겼지요. 다시 시간을 리와인드. 박 선수는 결승전을 앞두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로 저 곡,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듣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어서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됐다."


박태준, 아니 이번엔, 박태환. 한국 수영의 자존심인 이 선수는 근육질 몸매와 훈훈한 얼굴, 수영 실력만큼이나 경기 전 꼭 쓰고 나오는 헤드폰으로 유명했습니다. 많은 수영선수는 정신력 강화나 긴장 완화, 자신감 충전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마치 미국 프로레슬링이나 프로야구의 입장 음악과도 같은, 자신만의 사운드트랙을 재생해 앞으로 진행될 몇 분의 시간을 드라마나 영화 같은 '한 페이지의 명장면'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는 거겠지요.

이렇듯 스포츠와 음악은 밀접한 관계입니다. 개막식 음악, 경기 응원가, 시상식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순간에 음악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Justice - D.A.N.C.E. (Official Video)
[ https://youtu.be/sy1dYFGkPUE ]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일부 논란도 있었지만, 음악적으로는 명장면이 많았습니다. 스타디움 밖, 야외에서 펼쳐진 이례적인 행사. 센강으로 배를 타고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는 동안 주로 프랑스 출신 음악가들의 대표곡들이 배경음악으로 흘렀죠. 귀 밝으신 분들이라면 1980년대 책받침 여신, 소피 마르소 주연의 '라붐'에 실렸던 블라디미르 코스마 작곡의 'Reality'부터 일렉트로닉 뮤직 듀오 저스티스의 대표곡 'D.A.N.C.E.'까지 다양한 프랑스 음악에 귀가 쫑긋쫑긋하셨으리라 믿습니다.

Gojira Olympic Performance HD - Ah! Ça Ira!
[ https://youtu.be/JJuZ5aJiXDg ]


프랑스 혁명의 상징적 장소인 콩시에르저리에서 펼쳐진, 프랑스 메탈 밴드 고지라의 헤비한 연주도 대단했습니다. 프랑스 유명 피아니스트 소피안 파마르와 가수 줄리엣 아르마네가 강 위에 띄운 구조물에서 존 레넌의 'Imagine'을 함께 연주한 장면도 잔상이 길게 남았어요.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명장면은 개막식 막바지, 에펠탑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셀린 디옹의 노래였습니다. 디옹은 2022년 12월 희소 질환인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Stiff-Person Syndrome·SPS)'을 앓는 사실을 공개한 뒤 1년 7개월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가수 인생이 끝난 거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에펠탑 위에서 그는 노래가 아니라 '부활'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나다 퀘벡주 출신인 디옹은 영어 노래 못잖게 불어권 최고의 가수로도 오랫동안 인기 얻었죠. 디옹이 에펠탑에서 부른 곡은 에디트 피아프의 'Hymne a l'amour(사랑의 찬가)'였습니다. '찬가'니까 기쁜 노래일 것 같지만 이 곡은 그 어떤 곡보다 슬픈 노래입니다. 1949년 10월, 피아프의 연인이자 유명 권투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은 사랑하는 피아프를 보기 위해 파리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탑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요절하죠. 비탄에 잠긴 피아프가 한 줄 한 줄 직접 써 내려간 가사가 '사랑의 찬가'로 피어납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대만 날 사랑한다면...'

'온몸 굳는 희소병' 셀린 디옹, 개회식 마지막 밝힌 열창 (개막식) / SBS / 2024 파리올림픽
[ https://youtu.be/8QhNkFT04wE ]


하지만 음악이 흐르면 환희도, 감동도 아닌 어떤 이유로 침울해지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 각 15명과 17명은 이번에 개인 중립 선수(AIN·Athlètes Individuels Neutres)라는 자격으로 참여했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평화 질서를 어겼다는 이유입니다. 벨라루스는 그 지원국이었기 때문이고요.

비슷한 예가 있었습니다. 도핑 스캔들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를 받은 러시아가 국가명 대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등의 명칭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했었던 거요. 러시아 선수단은 그 당시,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도 자국 국가를 들을 수 없었는데, 국가 대신 러시아 출신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선율이 재생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죠. AIN 선수단을 위해 IOC에서 아예 새로운 곡을 만들어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그 곡은 끝내 울려 퍼질 일이 생겼습니다. 지난 2일, 벨라루스 출신의 이반 리트비노비치가 남자 트램펄린 종목에서 우승했죠. 시상대에 오른 그 앞에 나타난 것은 벨라루스 국기가 아니라 조금은 멋대가리 없는 녹색과 흰색 바탕에 'AIN'이라 쓰인 깃발이었습니다. IOC 제공의 그 정체불명의 연주곡이 흘렀죠.

리트비노비치는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 "다음 올림픽 때는 우리나라의 국기, 국가와 함께 경쟁하고 싶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AIN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이 아닌) 도발"이라고 발끈하며 답변을 거부했지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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