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섹스의 OOTD

서울문화사 2024. 8.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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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면 벗는 옷을 뭐 하러 신경 쓰냐는 사람들이 아직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섹스는 삽입부터가 아니라 만나는 순간부터다.

“저는 집에서만 해서 크게 꾸밀 일이 없습니다.” 김우재(카레이서, 34세)는 내 질문에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인터뷰이 중 가장 난이도가 어려운 부류는 나이 많은 남자다. 이들은 이제 섹스에 호기심이 없다. 섹스의 진행 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재차 물었다. 그래도 주로 입는 게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편하다고 생각하는 옷이나. “속이 살짝 비치는 긴팔 티셔츠를 주로 입습니다. 브랜드는 따로 없고. 집이다 보니 옷보단 향에 신경 씁니다.” 왜 하필 향입니까? “향 아니면 뭐가 없잖아요. 조명 정도?” 난감해졌다. 김우재는 섹스 칼럼 인터뷰를 자주 한 사람처럼 간단하게 답했다. 칼럼의 대답은 상세하고,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김우재는 핵심만 말했다. 무엇을 어떻게 추구하는지. 이게 30대 남자가 섹스를 다루는 태도였다.

“제 대답이 별로 재미없죠? 저는 뭐든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김우재는 취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분명했다. 우디 계열 향을 피워두는 게 가장 좋고, 딱 달라붙는 검정색 폴라 티셔츠를 입는 여자를 좋아했다. “라운드넥 니트는 안 됩니다. 무조건 목을 완전히 감싸는 검정색 터틀넥이어야 합니다.” 왜 라운드넥 니트는 안 되는 겁니까? “완전히 다 가리고 있는 것을 벗길 때의 성취감이 더 큽니다.” 대단한 취향이다.

하지만 김우재는 열정이 많지는 않았다. 주로 어떤 스타일과 섹스하십니까? “지인의 지인과 하는 편입니다. 그래야 편하기도 하고요. 아예 모르는 여자와 하는 섹스도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카레이서가 완전한 공인은 아니어도 이름이 알려지는 직업인데 걱정은 안 되십니까 “구설수? 아이 돈 케어(I don’t care)입니다.” 김우재는 9년 넘게 레이싱을 해온 레이서다. 3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면서 가장 중요한 건 열정이 아니라 평정심이다. 빠른 판단력보다 더 큰 차분함. 김우재에겐 섹스도 그랬다. 오는 기회를 완전히 탈환할 뿐 매 순간 의미 부여하는 일이 없었다. 의미 부여는 그의 레이싱이든 섹스든 오히려 독이었다. 개인 작업실에 방문한 김우재는 내 인터뷰에 간결하게 답변하면서 개인 작업을 했다. 그러다 귀가했다. 저녁이라도 같이 드시고 가시지 그러십니까? “어우 저는 배부릅니다.” 자신이 먹은 피스타치오 몇 알의 껍데기를 모아 버리고, 컵에 반쯤 남은 커피를 들고 갔다. 김우재는 섹스는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망한다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했다. “저는 섹스를 좋아하니, 그게 그냥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죠”

“저는 상대마다 다르게 입어요.” 박희연(웹 디자이너, 24세)은 첫 섹스엔 주로 뭘 입느냐는 질문에 예상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종종 섹스 칼럼의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박희연은 드디어 잘 ‘맞는’ 남자와 연애 중이었다. 연애는 잘하고 계세요? “연애는 매번 즐겁죠, 저보다 두 살 많은 남자고, 쿨하고 이해심이 깊어요. 오빠 같고, 안정적이죠.”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 분이십니까? “그걸 추구하긴 해요. 근데 추구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다는 걸 요즘 느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안정적인 걸 추구하지만, 다른 섹스도 하고 싶어요. 인스타그램으로만 알던 남자를 혼자 간 카페에서 우연히 봤어요. 제가 좋아하는 마른 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책을 읽고 있었죠. 멋있어 보였어요.” 박희연은 모든 남자에게 ‘친절’하면서 ‘위트’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남자에게 그런다는 사실은 다른 남자들에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반대로 그게 박희연에겐 가능성이었다. 남자들이 가능성 없어 보인다고 ‘느끼게 하는 것’. “남자들은 성욕, 식욕, 수면욕 다음으로 승부욕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너무 재밌어요.” 박희연은 첫 섹스 때 OOTD(Outfit of the Day)도 상대마다 상이했다.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를 만날 땐 제가 입고 싶은 대로 편하게 입고 가요.”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예쁜 여자가 최고라고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잘생긴 남자가 더 최고죠. 예쁜 여자는 비교적 많지만 잘생긴 남자는 별로 없거든요. 게다가 잘 꾸미기까지 한다? 말 다 했죠.” 그런 남자를 볼 때 편한 옷을 입는 것도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함인가요? “그런 셈이죠.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여자들의 보편적인 OOTD는 야한 옷이었을 테니, 거기서 약간의 차별점을 두는 거죠. 어차피 저 말고도 섹스할 상대는 많아서 그 효과가 미미하겠지만, 유의미하다는 거에 의미를 두는 겁니다.” 다른 성향 남자들의 승부욕은 어떤 건가요? “잘생긴 남자를 제외한 ‘훈남’이나 조금 꾸밀 줄 아는 남자들을 만날 땐 라인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요. 엄청 파인 건 아니고,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상상하기 좋은 것. 그런 남자들과는 술 먹고 클럽으로 가요.” 자지는 않는 건가요? “클럽에서 약간의 스킨십만을 허용하죠. 남자들은 그때 저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섹스 시작은 삽입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저는 남자들과 그때부터 섹스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그래서 그 남자들과는 실제로 섹스도 하나요? “거의 하죠. 하지만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떤 경우죠? “제가 하고 싶지 않은 경우죠. 흐흐.” 그러면 다른 경우도 있나요? “완전 ‘에겐남(에스트로겐남 :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많은 남자)’ 들 만날 땐 누가 봐도 ‘야하게’ 입(어주)죠. 아, 모든 경우는 제가 맘에 든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고요.” 그러면 그들이 ‘하고 싶다’는 뜻을 비치나요? “아니요. 그들은 웬만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티내지 않아요. 그런 남자에겐 확실한 어필이 없으면 힘들죠. 하지만 그들도 결국 남자잖아요~.” 정말 경쾌한 삶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연애해서 경쾌하진 못해요.” 그러면서 박희연은 아까 말한 화이트 셔츠를 입은 남자와 연애만 안 하면 잤을 수도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섹스를 위해서 그날의 디테일을 더하거나 뺄 만큼의 여유는 제게 없습니다.
저는 제가 제일 멋있어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어쩌면 이게 가장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기존의 섹스 칼럼에선 능숙한 인물들을 주로 인터뷰했지만, 섹스 칼럼은 섹스를 잘하는 사람만 읽지 않는다. 섹스를 원하는 사람, 섹스를 못하는 사람, 잘하고 싶은 사람 등등이 읽는다. 그래서 이번엔 경험이 많은 남자가 아닌 경험을 더 많이 하고 싶은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 것들을 준비해야 합니까?” 송광수(직업군인, 25세)는 의아해했다. 매일 같은 복장으로 생활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OOTD에 그리 민감하지 못하다 해도, 그런 것들을 준비해야 하냐는 질문에 내가 놀랐다. “속옷만 잘 챙겨 입고, 깨끗한 몸을 유지하는 것에 더 추가해야 할 게 있습니까?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송광수의 답변은 평서문이 아니라 의문문이었다. 그래도 상대와의 첫 섹스에서 속옷과 청결 말고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것은 없습니까? “그냥 저는 항상 하고 싶어서, 여자를 만나러 나간다고 하면 제가 최대한 꾸밀 수 있는 만큼 꾸밉니다.” 이전에 박희연이 말한 에겐남과 정반대에 서있는 ‘테토남(에겐남과 반대되는 의미로 테스토스테론이 많아 남성성이 강한 남자)’ 같은 답변이었다. “섹스를 위해서 그날의 디테일을 더하거나 뺄 만큼의 여유는 제게 없습니다. 저는 제가 제일 멋있어 보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도 할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어쩌면 이게 가장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모든 남자는 섹스를 원한다. 하지만 섹스를 원하는 것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차이가 크다. 태도가 달라진다. 여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오늘 밤 섹스의 당락을 결정할 것 같은 불안감에 비위를 맞추고 저자세였다가, 돌연 ‘테토남’이 되기도 한다.”

앞의 두 인터뷰이는 정말 섹스 칼럼에 실릴 만한 대답을 했다면 송광수의 말은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였다. 칼럼엔 이런 답변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송광수는 과학고를 졸업한 수재다. 재수를 몇 번 한 후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송광수에게 여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섹스는 더더욱 어려웠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대해 군생활을 하는 송광수는 지금 사랑이든 연애든 섹스든 뭐든 하고 싶었다. “뭘 더 해야 합니까?.” 실제로 송광수는 책도 읽고, 관리도 하고, 운동도 하는, 그러니까 나름 관리하는 축에 속하는 남자였다. 그는 간절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처음 보는 여자한테까지도 적용되었다.

간절함은 과욕이 된다. 욕심을 버리시는 게 어떻습니까? “욕심이 버려져야 버리죠.” 모든 남자는 섹스를 원한다. 하지만 섹스를 원하는 것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차이가 크다. 태도가 달라진다. 여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오늘 밤 섹스의 당락을 결정할 것 같은 불안감에 비위를 맞추고 저자세였다가, 돌연 ‘테토남’이 되기도 한다. 섹스를 간절히 원하지 않는 남자가 되고 싶으면 답은 하나다. 섹스를 많이 해보면 된다. 송광수는 내 말을 듣더니 앞에 있던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등운동이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차피 섹스의 선택권은 저한테 없습니다. 여자가 선택하는 남자가 되기를 기다려야죠. 열심히.” 과학고 출신다운 분석력이었다.

Editor : 주현욱 | Words : 백윤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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