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공범인가, 억울한 피해자인가...‘구글 독점’ 판결 후폭풍
디바이스 제조사에 갑질 계약
MS “삼성폰에 엣지 탑재 구애
애초부터 가능성 없는 것 알았다”
삼성, 독점괴물과 협력은 패착
HW→SW기업 ‘도약기회’ 상실
최근 구글의 검색 및 광고 시장 독점을 유죄로 인정한 미국 연방법원 판결문에서 이처럼 삼성전자를 상대로 구글 경쟁사인 MS가 엣지와 빙 검색엔진 등을 선탑재하기 위해 벌인 구애 정황이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28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에는 존 틴터 MS 부사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해 구글과 경쟁하는 MS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자사 검색엔진을 탑재하기 위해 삼성 측과 접촉한 내용이 기록됐다.
법원은 삼성이 애플과 함께 구글 검색엔진을 선탑재한 대가로 구글의 돈을 받았음을 인정하면서도 구글이 요구하는 부당한 계약에 구속돼 다른 고객사로 사업을 확대하지 못한 점을 함께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은 독점기업 구글의 지배력을 키워준 공범일까, 억울한 희생양일까.
틴터 부사장은 엣지와 빙을 삼성전자 디바이스에 탑재할 수 없었던 상황(구글과 삼성의 계약 관계)을 내부 이메일로 언급하며 “우리(MS)조차도 듀오 모바일 디바이스에 구글과의 계약에 따라 구글 검색창과 크롬 브라우저를 선탑재해야 했다. 이건 구글로부터 (안드로이드) 라이선스를 얻기 위한 조치였다”고 전했다.
관련 이메일에서는 삼성전자가 자사 브라우저와 구글 크롬에 이어 MS 엣지까지 탑재할 가능성에 대해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는 것(dead on arrival)”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워싱턴DC 연방법원의 구글 유죄 판결 전인 작년 9월에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MS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빙을 삼성전자 디바이스의 기본 검색으로 설정하기 위해 설득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2019년 12월 사티아 나델라 MS CEO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나델라 CEO가 삼성 사장에게 기본 검색 엔진을 바꾸도록 푸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틴터 부사장은 “구글과 파트너십 때문에 큰 움직임을 원하지 않는다는 삼성의 분명한 피드백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러면서 MS가 수년간 삼성 경영진들에게 최소한 삼성 스마트폰의 기본 검색엔진 입찰 참여라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4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기본 검색 엔진을 구글에서 MS의 빙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월스트리트저널이 구글과의 광범위한 비즈니스 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삼성이 관련 검토를 중단했다고 전했다.
반란을 꿈꾼 삼성을 상대로 구글의 뒤끝 보복일까. 구글 픽셀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AI칩 생산을 삼성전자에 맡겨온 구글은 이 칩의 5세대 버전(텐서 G5)부터 제조사를 대만 TSMC로 바꿀 예정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미국 법원이 지난 2022년 유럽연합(EU)일반법원보다 더 강력하게 구글을 상대로 RSA를 통한 경쟁 제한 행위를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EU일반법원은 2022년 반독점 위반 혐의로 EU 경쟁당국이 부과한 40억 유로(약 6조원)의 벌금 대부분을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미국 법무부 기소 사건처럼 EU 경쟁당국은 구글이 자사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경쟁사의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봤는데 주요 쟁점 중 하나가 구글이 스마트폰 재조사 등에 제공한 RSA 인센티브의 적절성 여부였다.
EU일반법원은 ‘모바일앱 배포 협약(MADA)’ 등을 악용해 구글이 반경쟁적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독점 리베이트’로 불리는 RSA에 대해서는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RSA를 기반으로 지급된 모바일 기기 검색 시장 규모가 전체 검색 시장 대비 소규모인 점 등 EU일반법원은 구글이 RSA를 통해 시장의 상당 부분을 포섭했다는 점을 EU경쟁당국이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미국 법원이 RSA를 통한 인센티브 제공 자체를 시장 혁신 지체 등 반경쟁 행위로 판단한 반면 EU일반법원은 인센티브 제공이 실제 시장 경쟁을 얼마나 위축시켰는지 경쟁당국에 보다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 것이다.
AFA는 2021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LLC, 구글 아시아퍼시픽, 구글 코리아 등 3사를 상대로 2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위법 논리로 앞세운 계약 사항이기도 하다.
구글과 AFA를 체결하는 스마트폰 제조사는 안드로이드 소스코드를 변형해서 만든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없다. 이 갑질 협약으로 인해 또 다른 빅테크인 아마존의 경우 안드로이드 오픈소스를 이용해 ‘파이어 OS’를 개발하고도 디바이스 제조사들이 기기 제작에 응하지 않아 모바일 OS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다.
삼성전자 역시 ‘타이젠 OS’라는 자체 OS를 개발했으나 이 계약에 구속된 상황에서 안드로이드 OS의 영향력에 밀려 시장에서 퇴출되는 비참한 결과를 맞았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공정위의 처분에 반발한 구글의 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등 취소소송에 대해 원고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기기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접근권을 가진 구글의 영향력 때문에 파편화 금지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했다.
구글이 요구한 파편화금지협약으로 말미암아 삼성은 디바이스 제조사(HW)에서 소프트웨어(SW) 중심기업으로 진화하려는 미래 전략에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MS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2019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저지른 가장 큰 경영 상 실수에 대해 “MS가 지금의 안드로이드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소프트웨어의 세계, 특히 플랫폼은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시장입니다. 안드로이드는 비애플 표준 플랫폼으로 (구글이 아닌) MS가 당연히 가져갈 수 있는 시장이었죠. (구글과 경쟁에서 이겼더라면) 4000억 달러의 가치가 회사G(구글을 지칭)에서 회사M(마이크로소프트)으로 이전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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