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된 희방사계곡] 2시간 600mm 게릴라 폭우…아비규환에서 탈출하다
월간山은 조난당한 이들과 이들을 구하려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국립공원공단 1세대 레인저이자, 설악산과 지리산국립공원 소장을 지내고 2021년 퇴직한 신용석(66)씨의 아찔했던 소백산 산사태 이야기를 전한다. _편집자 주
34년 전 8월 재난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을 겪었다. 인생 최대의 공포감을 느끼며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날을 돌이켜 본다.
기상특보는 없던 1990년 8월 20일 오후 4시 30분쯤이었다. 소백산국립공원 희방사계곡 공원사무소에서 컴컴해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나(당시 소백산국립공원 관리 과장)는 직원 몇 명과 함께 계곡 위 야영장으로 올라갔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굵어지며 계곡물이 불어나 야영객들을 철수시키기 위해서였다.
1시간 전에도 올라가 주의를 줬지만, 일부 철수한 텐트 외에 10여 동의 텐트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직원들이 '문 닫힌' 텐트를 흔들며 "어서 철수하라!"고 소리쳤지만, 야영객들 대부분은 "무슨 소란이냐!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는 장대비로 변했다. 졸졸 흐르던 계곡물은 흙탕물로 변해 콸콸 쏟아지고, 야영장 가장자리의 흙더미가 쓸려나가고 있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직원들이 텐트 폴대를 뽑아 텐트를 주저앉히자 일부 야영객이 욕을 하며 멱살을 잡는 등 거칠게 항의했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흙탕물이 더욱 불어나 야영장 위로 물살이 넘실거렸고, 국립공원 직원들이 야영객들을 끌어 내다시피해서 계곡 바깥으로 철수시켰다. 끝까지 버티던 몇몇 사람이 흥분하며 항의했지만, 남겨진 텐트와 잡동사니들이 곧 물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내려갔다.
지옥의 바다가 된 희방사계곡
계곡 근처에 서있던 안내판 기둥이 무너지려 하자 직원들이 로프를 기둥에 묶어 끌어당겼지만, 급류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로프를 놓았다. 공원사무소 앞에 서있던 대형 안내판도 들이닥친 급류에 서너 번 휘청거리더니 "우지끈~"하며 쓸려 내려갔다.
고개를 들어 계곡 상류를 보니 물 색깔이 흑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산사태가 나서 검은 흙더미와 나무, 바위가 뒤엉켜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흘러오는 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서 오는 물이었다. 저승사자 같은 검은 폭포가 점점 가까이, 순식간에 코앞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급하게 사무소 안으로 철수한 직원들은 설마 사무실 내부가 침수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도로보다 서너 계단 높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포가 되어 내려온 계곡물이 거칠게 직진하며 사무소 위쪽 옹벽을 무너뜨렸다. 도로로 넘친 급류가 아스팔트를 걷어 올리며 길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봇대가 넘어져 성냥개비처럼 떠내려갔고, 사무소 위에 세워둔 청소차가 급류에 떠밀려서 기울어지며 사무소 건물 기둥에 "쿵!"하고 부딪치며 정지했다. 순식간에 사무소 내부로 검은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도로에서 밀려들어온 물이 사무소 1층에 차기 시작했다. 금고 안에 있던 중요 서류와 직인만 급히 챙겨 12명의 직원은 2층으로 대피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사무소 앞쪽 도로는 이미 아스팔트가 사라진 상태에서 결국 무너졌다. 아스팔트길이 거친 계곡으로 변했고, 사무소 뒤편 계곡에서는 넘실대는 급류 속으로 거대한 바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으르렁"댔다.
사무소 아래의 넓은 주차장은 이미 절반이 허물어져 승용차 서너 대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급류 속으로 사라졌다. 외근 나갔다 돌아오던 직원 서너 명이 멀리 끊긴 도로 건너편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무전을 쳐서 우리 상황을 국립공원 본부와 경찰서에 알리라고 소리쳤다. 엄청난 비바람 소리와 천둥 같은 격류 소리에, 고함으로는 전할 수 없었다. 급박한 상황에 다들 정신이 없어서 상대방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무소 주변은 파도 천지였다. 너무나 황당한 장면에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무소 건물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사람이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급류 속으로 굴러가던 바위들이 사무소 밑 옹벽을 때릴 때면, 건물이 "쿵! 쿵!"하고 흔들려 직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사무소 건물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원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빨리 탈출해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희방사계곡에만 국지적인 집중호우가 계속되고 있었다. 인근 풍기읍내는 부슬비만 내리고 있었다. 외근 나갔던 직원들이 이곳 상황을 경찰서와 소방서에 알렸지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조대가 오더라도 섬처럼 고립된 사무소에 접근할 방도가 없었다. 결국 비가 그치고 바위들의 '건물 때리기'가 멈추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실패한 탈출, 죽음의 위기
그때 바깥을 살피던 직원 한 명이 "탈출할 수 있다!"고 외치며 들어왔다. 급류에 쓸려오던 육중한 나무줄기 하나가 주차장의 옹벽 밑에 걸려 15m쯤 되는 계곡을 가로질러 외나무다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쪽 계곡은 약간 수위가 낮아져 있었다. 바로 위로 쓸려온 토사와 나뭇가지 더미가 일종의 댐이 됨으로써 수량의 절반이 방향을 틀어 사무소 앞의 도로로 질주하고 있었다.
급하게 사다리를 찾아 3m 높이의 옹벽을 내려서서, 통나무 위에 사다리를 걸쳤다. 우선 공수부대 출신의 직원이 안전을 확인할 겸 누운 자세로 사다리와 통나무를 기어서 건너갔고, 뒤이어 소장과 직원 한 명이 무사히 건너갔다. 뒤이어 여직원과 신입직원을 건너게 했다. 두 직원이 중간쯤 가고, 뒤이어 다른 한 명의 직원이 사다리에 올라탔다. 몇 초 후 통나무가 기우뚱하면서 직원 세 명이 급류로 떨어졌다. 아찔했다. 껍질이 다 벗겨져 맨들맨들한 통나무에 세 명이 올라 탄 상태에서 각자 균형을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바위가 "우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급류였기에 이들은 죽은 목숨이나 같았다. 그러나 휘몰아치던 급류가 이들의 몸을 옹벽으로 밀어붙였고, 그 와중에 옹벽을 잡은 직원 한 명이 떠내려가는 자의 손목을 잡았다.
세 명은 생사의 기로에서 간신히 생生 쪽에 서게 되었다. 컴컴한 계곡 밑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를 옹벽 위에 있던 직원이 간신히 들었다. 옹벽에 붙은 그들을 잡아 올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직원 서너 명이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끌어올렸다. 눈 깜빡할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앞서 직원들이 급류에 휘말리는 장면을 목격한 다른 직원들은 건너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통나무가 기울어져 더 이상의 탈출은 어려웠다.
다시 사무소 건물로 돌아온 9명의 직원은 모두 황망했고, 침묵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랜턴 불을 밝힌 실내에서 직원들은 눈빛만 초조하게 껌벅대고 있었다. 먼저 건너간 소장이 무전으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서 빨리 탈출하라고 지시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이행하기 어려웠다,
우선 직원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소장이 건너갔으니 이제 뭔가 우리들의 탈출 루트를 찾을 것이고, 곧 구조대가 올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직원들은 잡담을 주고받으며 상황에 적응했다. 힘을 내야 한다며 누군가 라면을 끓이고 죽을 쑤어 왔으나 제대로 삼키기 어려웠다. 구역질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를 단체 사진을 찍다
나는 야영객들만 철수시키고 직원들 철수는 생각지도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다. 계곡 상류에 상가가 있었고 거기에도 주민과 탐방객들이 이런 상황 아닐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침착해야 했지만,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불현듯 집 생각이 났고 가족들 얼굴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인상 펴~"라는 어설픈 농담을 하며, 소백산 조감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아니었기에 필름을 카메라에서 꺼내어 라면 봉지에 담은 뒤 꽁꽁 묶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촛불 밑에서 상황일지를 썼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힘을 꽉 주었으나 글씨는 점점 휘갈겨졌다. 결국 다른 직원을 불러 말을 받아 적도록 했다. 엊그제 입사한 신입직원이 이 모습을 보고 "다 떠내려갈 텐데 무슨 소용인가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일지와 필름을 금고 안에 넣으면 사무실이 떠내려가더라도 언젠가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일지와 필름은 내 주머니 속에 있다가 일지는 다시 정서正書해서 본부에 제출했고, 필름은 인화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 속 직원들의 모습은 모두 담담했다.
경찰의 합류로 반전된 상황
그렇게 1시간쯤 장대비가 쏟아졌다. 사무소 앞 도로는 5~6m 깊이의 계곡이 되었고,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무소 1층에 들어왔던 물이 다 빠져나갔지만, 검은 뻘과 모래와 자갈이 남았고, 지하실은 침수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걸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사무소 건물의 도면을 들여다 본 신입사원(기술직)이 "건물이 더 기울어질 확률이 높다"며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장애물이 없는 2층 복도로 나가서 건물이 다 기울어지고 난 뒤에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출 후에는 그나마 안전하게 남아 있는 옹벽 밑 주차장으로 대피하기로 했다. 이런 계획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어떤 사람이 바깥에서 쑥 들어왔다. 계곡 상류의 상가에 있던 경찰이 하산하면서 계곡 건너편에 있던 소장과 만나 우리 상황을 알아보러 계곡을 횡단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건너려 했던 커다란 나무 기둥을 통해 들어왔다.
때마침 계곡을 굴러가던 바위가 사무소 옹벽을 "쿵! 쿵!" 때려 건물이 진동하자 경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와 경찰은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으니 어떻게든 건물을 탈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원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밤 10시였다.
3분이 3시간 같았던 탈출
계곡물은 여전히 거친 파도와 굉음을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통나무가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주변에 처박힌 나무줄기들을 통나무에 결박하고, 통나무 위에 사다리를 올렸다. 사다리가 짧아 그 이후부터는 엉금엉금 기어서 가야 했다. 통나무에서 균형을 잡도록 한 사람이 다 건넌 후에 다른 사람이 건너도록 했다. 통나무 밑으로는 거센 흙탕물이 물방울을 튀기며 으르렁댔다.
악마가 밑에서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한 사람이 건너가는 데 3분쯤 걸렸는데, 마치 3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9명의 직원이 모두 계곡 횡단에 성공했다. "이제 살았다!"고 누군가 외쳤지만, 기쁨의 소리보다는 탄식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비탈을 올라 바라본 사무소 건물은 온통 계곡물에 휩싸여, 마치 격랑의 바다 위에 떠있는 조각배 같았다. 언제 휩쓸려 물살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계곡을 건넌 직원 중 일부는 경찰과 함께 계곡 위 상가 상황을 파악하러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상가를 벗어나 하산하고 있던 탐방객 16명과 만났다. 이들 중 하산이 어려운 7명은 직원 두 명과 함께 안전지대에 머무르기로 하고, 나머지 9명은 직원들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길 없고, 캄캄하고, 비바람 몰아치는 산자락을 넘고 넘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어렵게 국도로 내려오니 새벽 2시였다. 산에서 퍼붓던 빗줄기는 이곳에서는 가랑비 수준으로 내렸다.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에 탐방객들을 태워 보내고, 직원들은 풍기읍의 여관에 들어가 임시사무소를 설치했다. 나는 새벽 3시15분에 본부 당직실로 상황보고를 하고, 시간대별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주머니 속에 있던 일지를 꺼냈다. 물에 젖어 떡이 된 종이뭉치를 살살 펴서 일지를 다시 써내려갔다. 일지를 쓰면서도 아비규환의 희방사계곡을 벗어난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야영객 30명, 탐방객 64명, 직원 12명 모두 무사 생환
새벽 6시, 다시 희방사계곡으로 갔다. 현장에 도착해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사무소와 주차장은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이 암초에 부딪쳐 정지해 있는 장면처럼 보였다. 경북 경찰청 소속의 헬기 2대가 와서 상황 파악과 조난자 수색에 나섰고, 직원들이 계곡 상류로 올라가 상가와 희방사에 대피하고 있던 48명의 탐방객을 모두 데리고 내려왔다.
공원사무소에서 상가까지 2km의 산악도로는 절반이 무너져 절벽이 되었고, 나머지도 아스팔트가 대부분 파손되거나 사라진 상태였다. 구조 상황이 끝난 시각은 12시 30분이었다.
공원사무소 옥상에 설치된 우량계는 일시에 너무 많은 빗물이 담겨, 집중호우가 시작된 지 10분 만에 고장 난 상태였다. 10분간의 강우로 추정할 때 약 2시간 동안 600mm 이상의 비가 왔다. 300~500년 만에 한 번 올 확률이다.
계곡을 건너다 격류에 빠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처녀, 총각 직원은 목숨을 구한 인연 덕분이었는지, 함께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물 폭탄'을 만나 저 세상 끝까지 다녀온 12명의 레인저들은, 다음날부터 응급복구와 피해 조사, 도로 복구사업 등 '일 폭탄'을 만나 2년 가까이 격무를 수행했다.
그들은 매년 8월 20일이면 그때의 생사고락을 회상하는 모임을 25년 동안 해왔다.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설마 그랬을 리가?"라며 믿지 않았지만, 이 모임에서만큼은 서로 맞장구를 치는 무용담이 되었다.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야영객 30명, 탐방객 64명, 직원 12명 모두 무사히 생환한 절체절명의 사건이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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