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24. 8.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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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유럽을 호령하던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했을 때 그는 자신이 애독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괴테를 초청했다.

그때 괴테를 만난 나폴레옹의 말은 "쎄롬"(C'est L'homme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그때 드골은 행동하는 지식인, 앙드레 말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삶이 고단함이 느껴질수록, 그럴 때마다 필요한 것이 문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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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천안문학관장

전 유럽을 호령하던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했을 때 그는 자신이 애독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저자 괴테를 초청했다. 그때 괴테를 만난 나폴레옹의 말은 "쎄롬"(C'est L'homme 인간다운 인간)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에 저항하며 레지스탕스를 지휘하던 드골 장군이 파리로 개선했다. 그때 드골은 행동하는 지식인, 앙드레 말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쎄롬".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높은 정신을 만났다는 찬탄이었다.

전후 프랑스의 재건을 떠맡은 드골은 말로를 문화부장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문화부를 정부의 제1부서로 격상시켰다. 그러자 말로는 상처 입은 프랑스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가 내건 구호는 '위대한 프랑스'였다. 한때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던 프랑스의 명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상처받은 국민들을 보듬고 상실감에 빠진 지성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정신의 변혁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드골과 말로, 이 두 지성은 프랑스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감을 회복한 데서 기인한다. 그들이 외쳤던 '위대한 프랑스'는 오늘까지 프랑스의 구호가 되고 있다. 문화란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예산의 몇 퍼센트를 문화 부문에 배정하겠다", "문화공간 확충과 창작여건 마련에 주력하겠다", "시민문화 향수권 신장을 위해 인프라 구축에 나서겠다" 등등. 금세라도 문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는 듯 싶다. 기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들 정치인들이 문화를 옷에 다는 액세서리 수준의 장식품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문화란 '시를 좋아한다, 음악을 듣는다. 공연의 매력에 빠졌다. 미술작품을 관람한다'는, 표면적인 행위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의 가치는 본질적인 데에 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높은 가치 위에 있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문화다. 그래서 문화는 장식품일 수 없다. 문화는 삶의 본질, 정신의 핵심, 생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때문에 선진국을 일컬을 때 반드시 물질문명 위에 정신문명의 척도를 거론하는 것이다.

1930년대 초 미국이 대공황의 늪에 허덕이고 있을 때, 루즈벨트 대통령은 말했다. "극복해야 할 최대의 적은 희망을 저버리는 일이다". 이 말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삶이 고단함이 느껴질수록, 그럴 때마다 필요한 것이 문화 의식이다. 루즈벨트는 뉴딜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해, 미국 번영의 초석을 다졌다. 문화마인드를 가지고 위기를 최대 기회로 바꾼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본질이다. 목적에 대한 확고한 신념, 당위성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현상을 올바르게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불평등 문제와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개탄하던 상처받은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프랑스가 그러했듯, 정신의 변혁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이러한 문화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열정, 정체성을 향한 고민과 연찬, 공유와 확산을 향한 다양한 의식…. 낡은 삶의 방식의 변화라는 시대적 변혁 앞에서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쎄롬" 아닐까? 이정우 천안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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