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강제징용 노동자였다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8.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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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는 늘 포도를 따주셨다.

절뚝이는 다리로 걸음을 옮기신 다음, 넝쿨 속에서 최대한 잘 익은 놈을 골라내 철가위로 싹둑, 자르는 외할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매우 검고 두꺼웠던 모습이 기억난다.

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 알게 되었다.

'홋카이도 강제징용 노동자 유해 115구 70년 만에 고국의 품에(2015년)' 같은 과거 기사들을 읽다 보니 외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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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외갓집에 가면 외할아버지는 늘 포도를 따주셨다. 마당 수돗가 위 지지대 사이로 포도 넝쿨이 자라 있었다. 절뚝이는 다리로 걸음을 옮기신 다음, 넝쿨 속에서 최대한 잘 익은 놈을 골라내 철가위로 싹둑, 자르는 외할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매우 검고 두꺼웠던 모습이 기억난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 알게 되었다. 홋카이도(북해도) 하코다테 항구라고 했다. “네 외할머니 말론, 끌려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머리에 이가 버글버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밥 주니까 그것부터 허겁지겁 막 먹더래” “낮엔 폭격기 공습 때문에 어디 숨어 있다가 야간에 나가서 일하고 했다데”. 엄마와 외삼촌이 전해주는 외할아버지의 젊은 날은 아득하고도 쓰라렸다.

2009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수를 730여만 명으로 추정했다. 홋카이도 지역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은 14만5000여 명, 그 가운데 사망한 이가 최소 2285명이다(시민단체 ‘강제연행 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탄광, 군수공장, 비행장, 도로, 댐 건설 현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일하다 상당수가 죽어나갔다. ‘홋카이도 강제징용 노동자 유해 115구 70년 만에 고국의 품에(2015년)’ 같은 과거 기사들을 읽다 보니 외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구나 싶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희생된 조선인 115명의 유골이 2015년 9월18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연합뉴스

곧 8월15일, 광복 79주년이다. 그 시간 동안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기록을 발굴해 후손에 전한 건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도 아닌 일본 시민과 재일조선인들, 그리고 고국의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들이었다. 민간단체들의 노력은 번번이 벽에 부딪혔고 그사이 구체적인 기억을 지닌 피해 당사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제대로 된 배상과 사과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강제동원의 현장들은 ‘역사상, 관상상, 민족학상 또는 인류학상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이번 호에 다룬 사도광산은 그중 한 사례일 뿐이다.

애초 해온 바가 없었기에 우리 정부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 국내외 기업에게 기부금을 거둬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내놓았을 때, 사도광산 전시 내 강제성 표현 여부 합의에 대한 사실관계 해명이 오락가락할 때, 독립기념관장으로 “1945년 8월15일은 광복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뉴라이트 인사를 앉힐 때, 일련의 공통된 맥락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없던 기대마저 조금씩 부서져가고 있다.

가본 적 없는 일본 ‘하코다테’를 구글에서 검색해봤다. “하코다테는 시민들의 인기 명소입니다. 도시와 자연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아름다운 역사와 장소, 온천, 맛있는 음식과 다양한 이벤트 등의 매력이…”라는 하코다테시 공식 관광 정보 사이트 설명이 첫 페이지에 떴다. 다른 이들 모두가 그곳을 아름다운 관광지로 받아들일지라도, 외할아버지가 젊은 날 겪은 고통의 경험을 전해 들은 나로서는 하코다테의 어두운 역사를 잊고 싶지 않다. 너무 불공정하고 억울하지 않은가. 적어도 피해자의 후손인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는 역사가 기록되지 않는 일은.

※강제동원 조선인 노동자 특별 페이지 ‘흩어진 역사, 잊혀진 이름들’ monument.sisain.co.kr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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