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된 당산나무 죽인 범인 잡아달라…경북 예천 마을서 무슨 일이?
“온 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으로 여기는 나문데, 우째이랄 수 있니껴.”
지난 9일 오후 경북 예천군 유천면 광전마을에서 만난 김진만씨(가명)가 서서히 죽어가는 노거수를 바라보며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른 3명이 팔을 뻗어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큰 나무는 녹음이 우거져야 할 여름임에도 잎이 모두 떨어진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너른 밭’이라는 뜻은 가진 광전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 노거수는 수령 4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동네 위하는 나무’라는 뜻에서 ‘삼신당’이라고 이름을 붙여 100년 넘게 동신제를 지내왔다. 마을을 지키는 신이 깃들었다는 의미로 ‘당산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단 옆에는 ‘그리운 당산나무’라고 쓰인 비석이 놓였다. 시골을 떠나 서울 등지로 떠난 출향민 80여명이 당산나무 고사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지난달 20일 세운 비석이다. 비석을 세운 날 출향민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당산제도 지냈다. 나무에 깃든 신의 노여움을 풀고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인근에 있는 4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무에 금줄을 치고 동신제를 지내기 위한 준비로 마을이 떠들썩했다”며 “우리 마을의 보물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마을 보물이 힘을 잃어버린 것은 지난해 6월로 추정된다. 이 마을 출향민 이모씨는 “항공사진 등을 비교해보니 작년 6월부터 새끼나무가 말라죽기 시작했다”며 “누군가 고의로 농약을 뿌려 죽였다”고 말했다. 당산나무는 큰 어미나무와 상대적으로 작은 새끼나무 3그루로 이뤄져 있다.
실제 당산나무 곳곳에는 드릴 등을 이용해 뚫은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37개나 발견됐다. 출향민들은 이 구멍을 통해 제초제 등을 주입한 것으로 본다. 거목을 고사시킬 때 주로 쓰는 방식이다. 출향민들은 지난 2일 예천경찰서에 당산나무를 죽인 범인을 잡아달라며 고발장을 제출했다.
범인은 당산나무 바로 옆에 사는 60대 남성 A씨로 추정된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낙엽이 자신의 마당에 떨어진다는 이유로 농약 성분의 제초제를 당산나무에 주입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가 주입한 농약 성분과 나무 고사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자신의 마당 위로 가지가 뻗어져 있는 당산나무의 새끼나무에 농약 성분을 집중적으로 주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어미나무와 새끼나무의 뿌리가 이어져 있는 탓에 어미나무마저 고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출향민 이모씨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당산나무 아래에서 뛰어놀며 커서는 가족들의 안녕을 빌었다”며 “마을 400년 역사의 산증인이자 수호신을 어떻게 주민들의 동의 없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죽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경찰의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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