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잭팟’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잭팟’ ‘쾌거’ ‘대박’이라는 말이 쏟아졌다. 7월17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핵발전소(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대다수 언론과 영향력 있는 유튜브 경제 채널은 찬사 일색이었다.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되었고, 최종 계약 여부는 내년 3월에야 확정되는 것임에도 그랬다.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공식 브리핑을 통해 ‘대어 낚았다’라는 표현을 쓰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00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원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강력한 교두보가 마련됐다”라고 말했다.
최근 포항 영일만 앞바다 석유·가스 시추 계획 논란 때와는 반응이 사뭇 다르다. 언론의 검증 보도나 정치권 논평이 이례적으로 잠잠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대한민국이 해냈습니다 24조원 원전 수출’이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내걸며 원전 수출을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민주당이나 조국혁신당 등에서는 관련 논평이 없다. 원내정당 중에는 유일하게 진보당이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언론과 정치권이 조용한 데에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현재 체코 원전 수출계약과 관련해서는 검증의 소재로 삼을 만한 정보가 거의 없다. 건설될 원전 2기의 사업 규모가 24조원이며, 향후 추가로 2기를 더 건설할 수 있다는 내용 정도만 확실할 뿐, 구체적인 사업 비용 및 계약조건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 미디어에서 쏟아낸 숱한 뉴스는 모두 정부 발표를 2차, 3차 가공한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원전 수출을 위해 체코를 세 번 방문했다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는 미담성 이야기 외에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가령 우선협상대상 선정 발표 직후부터 제기된 ‘덤핑 의혹’이 그렇다. 현재 이 의혹에 대한 정보들은 ‘확인 불가’다. 한국 정부, 한수원, 체코 정부 등 어디에서도 건설 단가 등 사업비용을 확인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밀 유지 계약에 따라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덤핑 논란의 출처가 정부의 보도자료였다는 사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17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보도자료에서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가 ㎾당 3571달러이고, 프랑스는 7931달러라고 설명했다. 이 금액을 근거로 프랑스에 비해 절반 이하의 단가를 제시해 ‘밑지는 장사’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이 수치는 이번 사업의 건설 단가가 아니라,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자체 파악한 단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보도자료에 2021년 기준 WNA가 발표한 각국의 원전 건설 단가를 각주로 달았는데, 일부에서 이 수치를 한국 측이 제시한 단가로 받아들이며 덤핑 논란의 계기가 되었다.
7월29일 국회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WNA 수치를 바탕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덤핑 의혹 등에 대해 질의했다. 안덕근 장관은 “체코에서 우리나라의 기한 내 시공능력을 높이 평가해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라고 반박하면서도 사업비용에 관해선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김정호 의원실 관계자는 “한수원 측에 입찰 제안서를 제출해달라고 했지만, 비밀 유지 의무에 따라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현재까지 체코 원전과 관련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내년 3월 최종 계약이 확정되더라도 비밀 유지 약속에 따라 구체적인 사업비용과 계약조건이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원전 특별법 제정하겠다는 대통령
정보가 막힌 상황에서 묵묵히 내년 3월의 낭보를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그러기엔 윤석열 정부가 ‘원전 부흥’에 너무나 진심이다. 체코 원전 계획 발표 직후부터 정부는 국제행사에서 K원전을 알리고 각종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원전 수출을 위한 전방위 국제 홍보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특별법’ 제정 계획까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30일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하고, 원전 생태계 복원과 수출지원 정책을 더욱 강력하고 일관되게 추진해서 앞으로 제3, 제4의 수주가 이어지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라고 말했다.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사활을 건 원전 생태계 복원과 제3, 제4의 원전 수출은 가능한 것일까. 이에 답하려면 현재 한국의 원전 수출을 둘러싼 현실과 세계 원자력산업 흐름 등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지식재산권(지재권) 문제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핵심 기술 여럿을 보유한 세계적 기업이다. 1978년 한국이 고리 1호기 원전을 건설할 때도 이 회사 기술을 전수받았다. 체코 원전 건설을 두고는 한수원,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삼파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직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을 상대로 지식재산권 침해 혐의로 소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체코에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이 자사의 기술을 베꼈다는 이유다.
2022년 한국이 폴란드 원전 건설 협력을 추진할 때에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지재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법원은 미국 정부만이 해당 소송에 대한 원고 자격을 갖출 수 있다는 이유로 소를 기각했지만, 이 판결은 민간기업인 웨스팅하우스가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취지일 뿐 지재권 침해 여부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 체코 원전 건설 경합 과정에서도 프랑스가 한국 측이 미국의 지재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재권 문제는 두고두고 원전 수출의 장애물이 될 전망이다.
“사실상 핵 공유” 논란으로 세간에 화제가 된 2023년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내용이 한국 측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원전에 대해서도 중요한 내용이 담겼다. “양국 정상은 (원전 관련) 각국의 수출통제 규정과 지식재산권을 상호 존중한다”라는 문구다. 과거 한·미 정상회담 때도 지재권 문제가 설명자료에 포함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공동성명 본문에 적시됐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가 웨스팅하우스의 손을 들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지재권 문제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풀어야 할 부분으로 지금 마지막 조율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안 장관이 말한 ‘조율’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거 UAE 원전 수출 때는 원전 건설 컨설팅 명목 등으로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에 기술 사용료를 지불하며 분쟁이 일단락된 바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덤핑 수출 의혹이 이는 마당에 만약 기술 사용료까지 지불할 경우 어떤 실익이 있을지 사회적 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둘째,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변화다. 이것이야말로 향후 한국의 원전 수출 전망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이슈다. ‘원전 생태계 복원’을 천명한 윤석열 정부는 물론이고 최근 여러 언론 및 경제 유튜브 채널은 전 세계가 다시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 모양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체코·폴란드 등 과거 동구권 국가에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개별 국가의 원전 계획만 놓고 보면 정말로 원전 산업이 부활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착시다. 거시적인 흐름은 명백히 다르다. 〈그림 1〉은 ‘2023 세계 원전산업 현황보고서(WINSR)’에 나오는 전 세계 원자력발전 비중 추이다. WINSR은 전 세계 원전 산업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다. 이에 따르면 전 세계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은 1996년 17.5%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감소해서 2022년에는 9.2%로 낮아졌다. 지난 20년간 신규 가동된 원전은 99기인데, 영구 폐쇄된 원전은 105기다. 신규 가동된 원전 중 49기가 중국 것임을 감안하면 전 세계의 원전 산업은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원전 산업이 쇠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 산업이라는 무대에서, 재생에너지가 주인공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원전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막대한 건설비용과 핵폐기물 처리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다. 원전은 설계부터 가동까지 평균 10년 이상 걸린다. 하루하루 심각성을 더하는 기후 재난에 대응하기에 원전은 너무 멀리 있다. RE100이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 역시 원전이 ‘너무 느린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번 체코 원전 역시 내년 3월 최종 계약이 이뤄질 경우 2036년에야 첫 호기가 완공될 예정이다. 앞으로 12년이나 남았다.
셋째, 유럽 에너지 시장의 변화다. 독일 등 재생에너지 강국이 즐비한 유럽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가 전력 공급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체코의 경우 재생에너지 비중이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유의할 것은 유럽의 전력시장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의 태양광 재생에너지가 독일 베를린의 가정집까지 전달되는 구조다.
잭팟은 한국이 아니라 체코?
이렇다 보니 날씨가 좋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날에는 유럽 각국의 도매 전기요금이 ‘네거티브’로 떨어진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해도 돈이 안 되는 것은 물론 발전을 멈추지 못할 경우 돈을 토해내야 한다. 한번 가동하면 전력 생산을 멈추기 어려운 원전 사업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재생에너지 증가로 이런 추세가 이어질수록 원전은 ‘좌초 자산’이 되리라는 경고도 나온다.
체코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림 2〉는 7월13일 체코 에너지규제청(ERU)이 발전사업자들에게 보낸 공문이다. “내일(7월14일) 아래 시간 동안 전기가격이 네거티브로 설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발전사업자 여러분은 해당 시간 생산을 제한하여 전력 상황의 악화를 방지해주시기 바랍니다.” 7월23일 이 자료를 공개한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은 “이번 체코 원전 수주전은 살 사람은 거의 없는데 팔 사람만 넘쳐나는 ‘레드오션’이 된 세계 원전 시장의 비애를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마지막 문제는 체코 정부의 속내다. 이번 원전 건설에 소요될 24조원은 체코 정부 1년 예산의 약 17%를 차지하는 거액이다. 이 돈을 체코 정부는 어떻게 마련하려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 원전 산업의 전망이 밝지 않은 유럽에서는 민간 투자자를 구하기 어렵다.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는 방법도 있으나, 핵폐기물 처리장 확보와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2022년 웨스팅하우스를 원전 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폴란드 역시 아직까지 뚜렷한 자금조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등장한다. 수은이 체코 정부에 금융지원을 하는 형식으로 원전 건설 비용을 충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수은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때도 31억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안덕근 장관은 이를 부인하며 체코 정부가 재원을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앞일은 모른다.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체코가 사업 초기에는 자체 재정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도 있지만, 추가 발주에선 금융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잭팟을 터뜨린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체코 정부라는 말도 나온다. 오는 9월 상원 선거, 내년 10월 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체코 집권세력에게 신흥 선진국 한국과의 원전 건설 계약은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다. 재원의 상당 부분을 실제로 한국 측이 지원할 경우 체코 정부로서는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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