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질병이 아니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일 뿐

이상원 기자 2024. 8.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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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질병으로 규정한 게임이용장애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다. 국내 도입을 막기 위해 법안이 발의됐다. 업계 반발이 거세지만, 과학적 합의를 뒤집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서울 시내 한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연합뉴스

게임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오랜 기간, 일상에 악영향을 받으면서도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청소년이 취약하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증상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병명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다. WHO 결정 후 5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논란이 한창이다.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을 앞두고 반발이 거세다.

게임이용장애는 국제질병분류 11판(ICD-11)에 새로 들어간 질병 코드다. ICD는 질병 유형을 나누는 데 쓰이는 분류 체계다. 1990년 10판 공포 후 29년 만에 개정하면서 신규 질병이 대폭 늘었다. 그중 하나가 게임이용장애다. WHO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결정한 건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과도한 게임 사용을 지적하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여럿 나왔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진단 기준 DSM-5에 ‘추가 연구 요망 항목’으로 ‘인터넷 게임 장애’를 넣었다. 같은 해 WHO 태스크포스는 디지털·전자기기 과다 사용에 대한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2015년 ICD-11 초안 검토를 완료하고 현장 조사를 거쳐 내놓은 병명이 게임이용장애다.

이 신종 질병은 게임을 마약 취급하겠다는 선언문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게이머뿐만 아니라 WHO 보건 전문가들 또한 게임이 헤로인이나 코카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게임과 게임이용장애의 관계는 포커와 도박중독에 가깝다. 카드놀이는 즐거운 유흥이고 문화이지만 도박중독은 실재하는 질병이다. 도박중독처럼 아주 좁은 범위의 게임 오용만 게임이용장애에 속한다.

ICD-11에 따르면 그 증상은 이렇다. ‘1)게임 통제기능 저하(발발, 빈도, 강도, 지속성, 종료, 상황) 2)일상의 다른 흥미나 활동보다 게임 우선시 3)악영향이 발생해도 게임 이용을 지속하거나 늘림.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주요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킴.’

정신의학계는 실제 환자를 전체 게이머 대비 극히 일부로 추정한다. 최소 12개월간 지속되거나 그 증상이 매우 심각해야 비로소 게임이용장애라고 진단할 수 있다. 지난 3월 WHO가 발간한 ‘ICD-11 정신·행위·발달장애에 대한 임상 설명과 진단 요건(CDDR)’은 ICD-11의 세부 지침서다. CDDR은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이라면 나도 환자인가?’라는 비판적 의문 대부분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게임이용장애가 아닌 사례를 규정한 ‘정상 범주’라는 항목을 보자. 하루 10시간씩 10년간 게임을 했으나 일상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게임이용장애가 아니다. “다른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반복적이거나 지속적인 게임만으로 게임이용장애라고 진단해서는 안 된다.” 매일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학업성적이 떨어졌지만, 그 목적이 친구들과 사귀기 위해서라면? “사회적 상호작용 촉진과 같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게임이용장애라고 진단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게임 기술 및 숙련도 개발”을 위해 장시간 게임을 하는 것도 질병이 아니다. 즉 ‘프로게이머를 잠재적 환자로 몰아간다’는 일각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또한 게임이용장애를 진단하는 의사는 “문화·하위문화·동료 집단 표준을 감안해야 한다”. 가령 매일 5시간씩 게임하는 14세 남성 청소년이 한국 사회에 대다수라면 (그 적절성은 차치하고) 의사는 이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WHO 결정이 ‘과학적 근거’ 없다고?

그런데 정부와 국회, 게임업계는 초안 발표 1년을 앞두고 게임이용장애 KCD 도입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간 통계청은 5년 주기로 개정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ICD 개정 사항을 반영해왔다. 전례에 따르면 2026년 시행될 KCD 9판에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우나, ICD 개정 사항의 양이 방대하다는 이유로 10판으로 미뤄졌다. KCD 10판 초안은 내년 10월 나올 예정이다.

2019년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게임업계와 의료계 관계자 등이 모여 민관협의체를 꾸렸다. 게임이용장애 KCD 반영 여부라는 단일 안건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계기는 게임업계의 반발이다. 이들은 게임이용장애라는 질병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라고 비판한다. 의료와 보건 문제에 대해, WHO를 상대로 한 ‘과학적’ 비판은 힘을 받기 어렵다. 국내에 그만한 권위를 가진 학자는 없다. 게임업계가 초빙한 몇몇 비판적 해외 학자 주장도 이미 ICD-11이 나온 이상 소수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논의는 ‘산업 위축’으로 흐른다. ‘수출 효자상품’이 덜 팔릴 수 있다는 업계의 주장이다.

7월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게임산업협회가 주최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연합뉴스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강유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은 7월15일 통계법을 대표 발의했다. ICD 개정 사항을 KCD에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ICD를 ‘기준으로’ KCD를 작성한다는 현행법을, ICD를 ‘참고하여’로 바꿨다. ‘관련 전문가 또는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강유정 의원실 관계자는 “ICD는 권고 사항이지 (각국에 도입해야 한다는) 강제 사항이 아니다. ICD-11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나라는 현재 중국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통계법 개정을 통한 ‘게임 질병화 방지’는 지난 총선 젊은 유권자들을 겨냥해 민주당이 내세운 ‘취향 저격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입장도 다르지 않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7월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 코드로 등재하고 그렇게(질병으로) 규정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통계법 개정을 통한 게임이용장애 누락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이해관계자를 테이블에 앉혀 내놓은 결론은 공중보건에 최선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난 5년간 게임업계는 한결같이 이런 주장을 반복했다. ‘게임은 문화다. 게임은 마약이 아니다. 게임중독은 없다. 여타 질병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게임의 중독성은 의도된 사항이다.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비디오 게임은 정말 중독성이 있는가?’라는 기사에서, 게임 개발자가 중독을 유도하는 방식을 다뤘다. 접속할 때마다 보상을 주고 정기적으로 플레이하지 않는 이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게 전통적 예시다. 사행성 높은 ‘확률형 아이템’도 악명 높다. 기사는 이 기법들이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설계되었다”라고 소개한다. 그간 국내에서 벌어진 논의를 되돌아보면 KCD 개정 과정에서 게임업계가 이런 내용을 자성하리라고는 예상하기 어렵다.

더 핵심적 문제도 남는다. 한국 통계청이 KCD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게임이용장애라는 증상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전 세계 보건 전문가들이 길게 잡으면 20년 이상 논의를 거쳐 규정한 이 신종 질병은, 한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든 국제사회의 경계 대상이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국가적 예방 체계 정비’라는 사회적 실익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질병을 규정하면 공중보건 시스템이 움직인다. 현황을 조사하고 폐해를 예방할 의무가 정부에 생긴다. 산업은 힘이 세지만 피해 보는 시민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과 연대하는 게 보건의료 정신이다. KCD를 개정하지 않으면 한국만 뒤처지게 된다.”

연 매출 20조원에 달하는 게임업계, 젊은 층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권은 게임이용장애를 ‘없는 병’으로 만들고자 한다. 내년까지 논의를 매듭짓지 않고 일단 KCD 11판 개정 때로 등재 결정을 미루는 걸 현실적 목표로 잡는 업계 관계자도 있다. 이들의 시도가 성공하더라도 과학적 합의는 그대로다. 눈을 가린다고 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월8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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