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끊임없이 지배구조에 손을 댈까
지난달 두산과 SK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할해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하겠다는 것이며, SK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그룹의 개편안은 모두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핵심역량이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단순히 알짜회사와 합치는 방식으로 위기를 넘기겠다는 꼼수로 해석되며,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심지어는 개편안이 완성되면 어떠한 출자나 노력 없이 오히려 대주주의 지분은 늘어나고 지배력이 강화되는 구조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반주주들의 반발은 점점 거세지는 분위기다.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일반주주에게 전가한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주식시장에 반영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비롯한 기존 주주들이 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합병안이 발표된 7월 11일 2만 1850원이었던 에너빌리티의 주가는 이달 초 1만 5860원까지 떨어졌다. 밥캣은 5만 2000원에서 3만 4250원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로보틱스도 8만 5300원에서 5만 9300원으로 대폭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도 합병을 의결했던 7월 17일 11만 9700원이던 주가는 2주 만에 9만 2800원까지 떨어졌다. 그 후로 일부 반등은 했지만, 관련 4개 기업의 주가는 여전히 주식매수청구가를 10~22% 밑돌고 있는 상황이다. 8월 12일 현재 에너빌리티 주가는 1만 7690원, 밥캣 3만 9050원, 로보틱스 6만 4900원이며, SK이노베이션은 10만 1000원이다. 주식매수청구가는 에너빌리티 2만 890원, 밥캣 5만 459원, 로보틱스는 8만 472원, SK이노베이션 11만 1943원이다.
SK이노베이션과 두산그룹 3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이하에서 맴돌고 있으면서, 두 그룹 수뇌부는 비상이다.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면, 대규모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되면서 엄청난 자금이 투입돼야 하고, 자칫하면 개편안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주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 밀어 부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큰 것으로 보인다.
밥캣은 작년에 매출 9조 7589억원, 영업이익 1조 3899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로보틱스는 매출 530억 원에 192억 원의 손실을 냈다.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 없고, 누적결손금은 1000억 원에 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밥캣 주주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잘나가던 회사가 상장폐지가 되면서, 매출규모가 거의 0.5% 정도이며, 영업이익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회사와 강제로 주식을 교환해야 하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두산 입장에서는 로보틱스와 밥캣을 붙여 시너지를 내겠다고 하지만, 로봇 산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고, 막대한 자금이 계속 투입돼야만 한다. 그런데 로보틱스의 2분기 영업손실이 확대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병비율은 대주주가 많은 지분을 보유한 로보틱스에 훨씬 유리하게 적용되면서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3단계에 걸쳐 아주 복잡하게 이루어진다. 먼저 상장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를 1: 0.25 비율로 인적분할하여 기존사업을 담당하는 존속법인과 상장사인 두산밥캣 (지분율 46.1%)을 보유한 신설회사로 나눈다. 그 뒤 신설회사를 1: 0.13 비율로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주가 보유한 밥캣 잔여 지분 44.9% 등을 밥캣 주식 1주당 로보틱스 0.63주로 바꾸는 포괄적 주식 교환으로 취득한 뒤 밥캣을 상장폐지한다. 합병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대주주인 ㈜두산은 별다른 비용 투입 없이 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이 13%에서 42%로 늘어난다. 지배력이 3배 정도 강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분할합병 시너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주주들의 불만이 계속해서 커지자 금감원과 국회도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두산로보틱스 합병, 주식의 포괄적 교환, 이전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보완하라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에서도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SK그룹 개편안도 비슷한 처지다. 10분기 연속 적자행진 중인 이차전지 회사 SK온을 살리기 위해, SK온의 모회사이며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비상장 회사인 SK E&S 합병 안을 의결한 것이다. 이노베이션의 메인 비즈니스인 정유, 화학 사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배터리 자회사에 대한 대규모 자금 지원이 불가능해지자, 수익성이 좋은 SK E&S를 구원투수로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병비율이 E&S에 지나치게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딜이 성사되면, E&S 대주주인 SK㈜는 이노베이션 지분율이 36.2%에서 55.9%로 대폭 커진다. 동시에 E&S의 상환전환우선주를 대거 보유한 사모펀드 KKR의 지분도 늘어나도록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개편안은 일반주주들의 희생만 강요되는 느낌이다. 아울러 7.14%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상대적으로 손실을 볼 가능성도 커졌다. 미래 성장사업인 배터리 부문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모기업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고 했지만 결론은 지배주주의 몫을 키운 것이다.
지난달에 한화그룹도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공개매수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다. 삼성그룹도 계열사 합병비율 문제로 재판은 물론 국제중재 소송까지 벌이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 SK C&C와 SK가 합병할 때도 대주주 지분이 많았던 SK C&C에 유리한 비율이 적용됐다는 비판이 있었다. 오래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도 합병을 추진했지만, 과도한 주식매수청구로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두산과 SK그룹은 합병 이후 성장성을 강조하며 주주를 설득 중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소액주주, 외국인 투자자들도 이번에는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며 총 공세 중이다. 대기업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개편안들은 대부분 인적분할, 물적분할, 교환비율, 합병비율, 주식매수청구권, 포괄적 주식교환, 합병, 공개매수, 상장폐지 등 굉장히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고, 복잡한 절차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나름대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는 물론 상법에 따라 반대 의사를 통지하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서 주주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된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러한 지배구조 개편에서 언제나 패자는 일반주주다. 그래서 개미들은 "이러니 국장(국내증시)을 떠나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한탄한다. 어느 외국인 투자자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날강도'라는 심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글로벌 10대 경제강국의 낯 뜨거운 현실이다.
이제 더 이상 재벌기업들이 지배구조에 매몰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 모든 주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코리아 프리미엄'의 주역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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