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늦깎이 선발투수’의 대반전, 루고는 어떻게 에이스가 됐나[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이정도면 'FA 초대박 염가계약'이다. 루고는 어떻게 에이스가 됐을까.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몰마켓' 구단이다. FA 시장에 거액을 쏟아부은 적이 없다. 팀 최고 스타로 발돋움한 젊은 유격수 바비 위트 주니어에게 이례적인 11년 2억8,870만 달러 보장 장기계약을 안겼지만 이는 구단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 위트 이전까지 연장계약이든 FA 계약이든 1억 달러도 쓴 적이 없었다. 연장계약 최대규모는 살바도르 페레즈의 4년 8,200만 달러, FA 최대규모는 알렉스 고든의 4년 7,200만 달러였다.
올시즌을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위트에게 거액을 안겼지만 다른 투자는 '중소 규모'로 이뤄졌다. 선발 로테이션을 보강했지만 캔자스시티가 영입한 선수는 기껏해야 2년 3,000만 달러짜리 투수였다. 하지만 그 '2년 3,000만 달러' 투수가 올시즌 누구도 상상 못한 대반전을 이뤄냈다. 그 투수는 바로 1989년생 우완 세스 루고다.
루고는 지난시즌을 마치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 옵트아웃을 선언하고 FA 시장에 나섰다. 1년 전 첫 FA 자격을 얻은 뒤 샌디에이고와 2년 1,5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던 루고는 1년만에 다시 시장에 나서 '몸값'을 두 배로 올렸다.
2배 정도는 몸값이 오를만한 성과가 있었다. 지난시즌은 루고에게 있어 전환점이 되는 중요한 시즌이었다. 지난해 루고는 샌디에이고에서 26경기에 선발등판해 146.1이닝을 투구하며 8승 7패,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했다. 종아리 부상으로 한 달 이상 결장하며 규정이닝 소화에는 실패했지만 선발투수로서 준수하게 활약했다.
다소 평범해보이는 성적이 루고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루고가 이전 5시즌을 불펜투수로 뛴 선수였기 때문이다. 2016년 뉴욕 메츠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루고는 데뷔 첫 2시즌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보냈다. 데뷔시즌 17경기 중 8경기에 선발등판했고(64이닝) 2017시즌에는 19경기 중 18경기를 선발투수로 등판했다(101.1이닝).
선발투수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돋보이지도 못했다. 그리고 당시 메츠는 제이콥 디그롬, 잭 윌러, 노아 신더가드, 스티븐 마츠 등 뛰어난 재능을 가진 선발투수들을 대거 보유한 팀이었다. 메츠는 선발로 다소 애매했던 루고를 불펜으로 이동시켜 롱릴리프로 기용했다. 루고는 2018-2022시즌 5년간 239경기 329.1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16경기 평균자책점 5.15로 부진한 단축시즌을 제외한 4시즌 성적은 223경기 292.2이닝, 평균자책점 3.01. 롱릴리프는 루고에게 딱 맞는 옷처럼 보였다.
하지만 루고에게도 꿈이 있었다. 바로 데뷔 초 이후 기회를 잃은 선발투수의 꿈. 2022시즌 종료 후 FA가 된 루고는 샌디에이고에 입단하며 꿈에 그리던 선발 복귀를 보장받았다. 그리고 선발 복귀 첫 시즌 충분히 의미있는 활약을 펼쳤다. 스스로 선발투수로 경쟁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루고는 1년만에 옵트아웃을 선언하고 다시 시장에 나섰다. 그리고 '몸값'을 두 배 높여 캔자스시티와 계약했다.
캔자스시티에 입단한 루고는 모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캔자스시티가 루고에게 연평균 1,500만 달러의 돈을 지급하기로 했을 때 기대치는 건강하게 지난해 수준의 퍼포먼스만 내줘도 충분하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올시즌 활약은 지난해보다 훨씬 뛰어나다.
루고는 8월 12일(한국시간)까지 24경기에 선발등판해 155.2이닝을 투구하며 13승 6패, 평균자책점 2.72를 기록했다. 13승은 메이저리그 전체 다승 공동 1위, 155.2이닝은 아메리칸리그 최다이닝 1위(ML 2위), 평균자책점 2.72는 메이저리그 전체 3위(AL 3위)의 기록이다. 원래 탈삼진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투수는 아니고 피안타율(0.220)과 WHIP(1.05)는 전체 10위권 밖에 머물고 있지만 충분히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 중 한 명이라고 부를만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b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는 4.4로 메이저리그 전체 5위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후보 중 한 명인 셈. 올해 생애 첫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연봉 1,500만 달러가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성적에 비하면 헐값이나 마찬가지. 캔자스시티 입장에서는 굴러온 복덩이인 셈이다. 특히 루고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내에서 극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캔자스시티 입장에서 더 반갑다. 루고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상대로 3경기 3승, 평균자책점 0.79,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상대로 2경기 2승, 평균자책점 0.60,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2경기 1승, 평균자책점 0.75를 기록했다. 직접적으로 순위 경쟁을 펼치는 팀들을 상대로 '필승 카드'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벌써 34세가 된 베테랑 루고는 올해 포심 평균 구속이 지난해보다 시속 1마일 정도 떨어졌다. 구속의 하락은 좋은 징조가 아니지만 투구 레퍼토리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성적을 더 끌어올렸다. 포심과 커브에 대한 의존도가 큰 투수였던 루고는 포심과 커브 구사율을 모두 줄이는 대신 커터, 스플리터를 새로 장착했고 베이스볼 서번트 기준 무려 9가지 구종을 던지는 투수로 진화했다. 물론 모든 구종의 위력이 뛰어날 수는 없었지만 더 다양한 공을 구사하며 주무기인 포심, 커브의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 타자들 입장에서는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투수가 된 것이다. 여기에 꾸준히 안정적이었던 제구력이 더해져 효과가 극대화됐다.
물론 이 흐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포심 평균 구속이 시속 92.3마일에 불과한 루고는 리그 평균보다 느린 공을 던지는 투수고 리그 평균보다 강한 타구를 더 많이 허용하는 투수다. 실제 성적에 비해 기대 성적은 더 좋지 않다. 던지는 공의 위력과 허용하는 타구의 질을 감안하면 성적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투수인 것이 사실. 하지만 반드시 기대 지표와 실제 지표가 수렴하는 것은 아니다.
루고가 '사이영 후보급' 맹투를 펼치는 덕분에 캔자스시티는 현재 포스트시즌을 바라보며 순위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선두와 4경기차 지구 3위이자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레이스 3위인 캔자스시티는 오늘 당장 시즌이 끝난다면 포스트시즌 티켓을 손에 넣는 팀 중 하나다. 남은 시즌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도 있고 가을 무대에서 기세를 탄다면 2014-2015시즌 이후 또 한 번 가을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불펜에서 선발로 전향한 루고는 시장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커리어 내내 한 번도 규정이닝을 소화해 본 적도 없는 30대 중반 투수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평가였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 맹활약을 펼치며 리그를 이끄는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과연 루고가 올시즌을 어떤 모습으로 마칠지 남은 시즌 활약이 주목된다.(자료사진=세스 루고)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en@newsen.com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그의 성적이 곧 팀의 성적..흔들리는 ‘볼티모어의 심장’ 러치맨, 남은시즌 반등할까[슬로우볼]
- 갑자기 흔들린 운명..마이너리거로 전락한 데이비스는 반등할 수 있을까[슬로우볼]
- 그저 ‘유리몸’ 된 줄 알고 팔았는데..완벽히 부활한 오닐, 세인트루이스의 패착[슬로우볼]
- 든든한 ‘승리 자판기’ 덕분에..지난해 최약체서 최강으로 도약한 AL 중부지구[슬로우볼]
- ‘ML 유일 불명예 팀’의 승부수, 아로자레나는 시애틀을 WS로 이끌 수 있을까[슬로우볼]
- NL 서부서만 3번째 취업..왕년 ‘GG 유격수’ 아메드, 다저스 내야 구원투수 될까[슬로우볼]
- 여름 시장 큰 손 예고? ‘돈 쏟아부은 선수만’ 잘하는 다저스, 올시즌 결과는?[슬로우볼]
- ‘토사구팽’일까 ‘합리적 판단’일까..팩스턴 버린 다저스, 선택의 결과는?[슬로우볼]
- “WS 우승한다면 ‘8푼이’라도..” 떠날 준비하는 ‘TB 전설’ 롱고리아의 딜레마[슬로우볼]
- 워싱턴서도 실패한 ‘왕년 특급 기대주’ 센젤, 최하위 화이트삭스서는 다를까[슬로우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