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노사 미래 훼손시키는 최악의 법"[만났습니다①]

김소연 2024. 8. 13.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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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인터뷰
중소기업 사용자 유령사장 만들 것…부작용 크다
원하청 이중구조 해결에 노란봉투법만 답은 아냐
온건한 노조지도자 사라질 것…전투적 노사관계 우려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가장 안 좋은 법은 불확실성을 높이는 법이다. 입법이 미치는 결과가 불확실해 누구도 긍정과 부정의 효과를 따질 수 없어 그에 따른 위험을 일반 국민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다. 나쁜 입법의 선례가 됐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노동 관련 입법을 이념적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국가 경제, 근로자, 기업 모두에게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법인데, 효과에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이 시행되고 나면 부작용이 발생해도 다시 되돌리기도 어렵다. 박 교수는 “법은 비가역적”이라며 “입법자들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데 이념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한 마디로 ‘전문성 결여’”라고 강조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교수연구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하청 노조들, 원청과 교섭하려 들 것…생태계 무너져”

노란봉투법은 근로자의 개념, 사용자의 개념을 각각 확대했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면제를 확대한 것이 골자다. 특히 사용자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를 넘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했는데, 이렇게 되면 하청 노조가 원청에 근로조건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다.

박 교수는 “기본적으로 노동법 구조는 고용 관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며 “그런데 이 법은 ‘원청이 가장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하청 근로자에 대한 근로관계까지 모두 책임지라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원·하청 간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대기업은 협력관계를 맺은 하청 업체가 수 천개에 이른다”며 “하청 업체와 직접 교섭에 응하라는 것은 기존의 노동법 근간을 깨는 것이자 하청 업체 사용자를 유령 사장이 되게 만드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란봉투법에 따르면 하청 업체 사용자는 교섭할 의무도, 책임도, 실질적 권한도 없어진다”며 “노조 역시 하청 사용자가 아닌 원청과 교섭을 하려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박 교수는 유럽연합(EU) 사례를 들면서 “(노동분야에서) 원청이 하청 업체의 노동 인권 침해 사례를 보고하라는 ‘공급망 실사법’이라는 법이 생겼다. 이 법의 취지는 노동 인권을 탄압하는 기업과 거래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런 원칙은 세울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런데 ‘원청이 직접 하청 교섭에 임하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박 교수는 노사 관계를 발전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많음에도 가장 강력한 법을 먼저 도입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원·하청 이중구조를 해결하는 데 있어 노란봉투법만이 답이 아니다. 법을 적용할 때 그에 미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선택이 중요하다”며 “공동 노사협의회 등 원·하청 간 다양한 협의구조를 만들도록 제도화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도 있다. 이를 애써 무시하고 가장 강력한 제도를 입법화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사관계 더 경직…노조 공격성 가중 우려

노사 관계가 낙후된 한국 노동시장에서 이 법안은 오히려 더 경직된 노사 문화를 만들 것으로 박 교수는 예측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전 세계 63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2022년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한국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35위를 차지했다. 노동시장 지표가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 바 있다.

낙후된 노사관계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쟁 체제가 심화하는 가운데 노사 관계도 기업의 경쟁력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원가 경쟁, 협력 회사를 통한 전문성 확보, 질적 성장 등을 이뤄왔다”며 “외국 투자자들이 보면 우리 기업들의 이런 성장 구조가 지속 가능하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을 생각해보면) IT 등 주력 산업에서 기업들에 글로벌 경쟁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덧붙였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사진=김태형 기자)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한 점도 문제다. 개정안은 정당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뿐 아니라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도록 규정했다. 손해배상청구 제한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해 폭력·파괴행위, 정치파업 등 불법 쟁의행위를 포함한 모든 노조 활동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될 가능성이 있다. 박 교수는 “노동 3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라도 타인의 기본권을 훼손하거나 침해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며 “경직된 노사 문화에서 면책 효과만 잔뜩 부여하면 어떻게 되겠나. 공동체 미래를 훼손시키는 위험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이뤄지는 노조의 일방적인 쟁의행위에 아무런 통제 수단이 없다”며 “그럼 과연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노사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노조 지도자도 강성으로 가야 표를 얻을 것이고, 법을 지키면서 온건하게 노사 관계 만드는 평화주의적인 노조 지도자는 법도 잘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될 것”이라며 “노조의 쟁의행위 공격성은 더 가중되고 전투적인 노사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근로자의 불법 쟁의행위로 징계를 받았지만 사측이 이후 징계를 취소하거나 복직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이건 기업 자율의 범위에 속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현행 제도 안에서도 얼마든지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책임을 감소해주는 등의 과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사업장 폭력 점거 관행 등부터 개선이 필요하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법을 지키는 관행도 제대로 갖춰지기 전에 면책부터 적용하면, 타인의 재산이나 생명을 무시해도 된다고 보는 위험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도가 심하거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불법행위에는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문화가 생긴다”며 “부득이하게 피해를 막으려 했으나 한계를 넘어선 피해가 발생했다고 하면, 정황적 요인을 고려해 정상 참작도 가능하다. 처음부터 면책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고려대 법과대학 학사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대학원 법학과 석·박사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노동문제연구소장 △한국사회보장법학회장 △국가인원귀원회 정책자문위원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김소연 (sy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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