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에서 공영방송 분리하자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2024. 8. 1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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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국회 상임위원회 중 가장 긴 이름을 지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가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둘러싼 정쟁에 매몰되면서 본연의 업무인 과학기술, 정보통신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2024년 5월에 출범한 22대 국회 과방위에 계류된 법안 100건 중 77건이 과학기술, 정보통신 관련 법안이다. 인공지능(AI)기본법은 물론 망사용대가법, 디지털포용법 등 21대 국회 만료로 폐기된 법안들이 다시 발의됐지만 논의가 멈췄고,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 플랫폼 자율규제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이공계 지원 관련 법안도 대기 중이다.

22대 국회 과방위는 그간 총 15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는데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방송4법 개정,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임명,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선임 관련 청문회 등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와 관련된 회의였다. 국회법에 따르면 과방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통위, 원자력안전위원회, 우주항공청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과방위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라는 방통위 소관업무 일부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과방위에 대응해야 하는 방통위도 마찬가지다. 원래 방통위는 5인 위원회 합의제 구조를 갖췄지만 지난해 8월부터 2인체제로 운영됐고 최근엔 이진숙 위원장 탄핵소추로 인한 업무정지로 직무대행 1인체제로 운영된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제외한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위반 관련 과징금 부과,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 통신사 판매장려금 담합문제, OTT 요금인상 대응, AI 이용자 보호 등 현안은 논의가 대부분 중단됐다. 방통위 설치법상 이런 주요 현안들은 모두 방통위 심의·의결사항인데 이제 1인체제가 되면서 더이상의 논의가 불가능하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여부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는 수개월 동안 방통위는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자 과학과 방송을 분리하자,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분리하자는 여론이 확산한다. 현 상태가 계속되면 인공지능산업 진흥 등 당면한 국가적 어젠다의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국가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안엔 무엇이 있을까.

단기적으로 국회 차원에선 기존 과방위에서 공영방송부문만 특별위원회 내지 소위원회로 분리하는 방안이 있다. 국회법 제44조에 따르면 국회는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효율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본회의의 의결로 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고 제57조에 따르면 위원회는 소관사항을 분담·심사하기 위해 상설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 공영방송특별위원회나 공영방송소위원회를 두되 과방위 위원을 겸임토록 해서 안건 자체를 분리해 별도 위원회에서 심의하는 방안이다. 이미 국회는 예산결산, 윤리, 인구위기, 재난안전, 민생경제특별위원회를 운영한다.

행정부 차원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과학기술, 정보통신, 유료방송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공영방송은 독립규제위원회인 신설 공영방송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이다. 유료방송 정책과 통신 및 인터넷 정책은 독임제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하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리·감독에 관한 업무는 여야 합의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도 행정부 변경에 맞춰 공영방송위원회를 국회 운영위원회나 정무위원회의 소관으로 두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사실 방통위는 수십 년 계속된 기술, 서비스, 산업부문의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시대적인 변화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2008년 당시 민간기구인 방송위원회와 행정기관인 정보통신부가 통합돼 탄생했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 방통위는 당초 기대와 달리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쟁으로 인해 더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는 점이 확인됐다. 공영방송 이슈가 다른 모든 방송·통신 현안을 뒤덮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공영방송을 분리하는 방법 외엔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야 정치권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빠른 논의를 진행해주기 바란다.(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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