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55國 중 이제 겨우 2國 도와… 아직 할 일 많아”
“처음 수상 통보를 받았을 땐 ‘보이스 피싱인가?’ 생각했어요. 너무 뜻밖이어서요. 만해 선생님은 평생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신 민족지도자의 사표(師表)로서 존경해 왔습니다. 저로서는 기쁘고 영광스럽지만 다른 훌륭한 분들이 더 많을 텐데요….”
2024만해실천대상 수상자 원불교 김혜심(82) 교무는 ‘남아공과 에스와티니(구 스와질랜드)의 성자(聖者)’로 불린다. 약사 출신 원불교 성직자인 김 교무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무조건 도와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원광대 약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아프리카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단순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1995년 남아공으로 향했다.
남아공에서 도시에는 백인, 외곽에는 흑인이 모여 살고 있었다. 흑인 마을 남자들은 일하지 않고 여성들은 혹사당하고 아이들은 방치돼 있었다. 그는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세상,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었다”고 첫인상을 회고했다.
그는 현지에 ‘원광센터’를 설립해 청소년과 여성 교육에 앞장서며 작은 희망을 발견했다. “어른들은 300~400년 식민지 생활 때문인지 변화하지 않지만 세 살 때부터 함께 지내며 교육한 어린이들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태권도와 사물놀이를 가르치고 방과 후 학교를 열자 아이들은 365일 매일 찾아왔다. 국내 PC방에서 버리는 컴퓨터였지만 현지 아이들에겐 보물이었다. 매주 금요일엔 마을 공동묘지 청소에 나섰다. “왜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는지, 왜 청소를 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수백 번 가르쳐야 했어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서서히 아이들이 변하자 어른이 변하고, 가족이 변하니 마을이 변화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사물놀이 응원을 펼친 아이들이 경기 후 쓰레기를 정리하니 현지 경찰이 놀라워했다. 태권도 국가대표가 5~6명이 배출되고, 평창동계올림픽이 결정된 더반 IOC 총회 때에는 원광센터 사물놀이팀이 축하 공연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김 교무는 “먹고사는 문제를 돕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원광센터 청소년 6명을 서비스센터 직원으로 채용한 것도 큰 동기가 됐다. 대학을 졸업해도 흑인들은 취업이 잘 되지 않아 희망이 없었던 것. 여성들에게도 재봉을 가르쳐 교복 제작을 하도록 했다. “주부들이 소득이 생기니 걸음걸이 자체가 씩씩해지더라”고 김 교무는 말했다.
2000년부터는 이웃 에스와티니로 활동 영역을 넓혀 유치원과 보건소, 에이즈 쉼터를 만들어 어린이와 환자들을 돌봤다. 그런 김 교무를 현지인들은 ‘꼬꼬(현지어로 할머니)’ ‘블랙 마더’라고 불렀다.
3년을 미뤄 2018년 현직에서는 은퇴했지만 그는 지금도 현지에서 활동하는 후배 교무들을 지원하고 현지를 직접 방문하고 있다. 김 교무는 “아프리카에 갈 때 쉰 살이어서 늦은 건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며 “그때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원불교뿐 아니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다양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그는 “아프리카엔 55국이 있는데 저는 겨우 2국에서만 했을 뿐, 아직 할 일이 많다”며 “눈 밝고 뜻있는 분들이 함께 손잡는다면 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제=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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