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폭염·AI가 촉발한 100GW 시대, 전력망 확충에 사활 걸렸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인공지능(AI) 시대 본격화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2∼3시 사이 1시간 평균 전력 실제 총수요 추계가 100.2GW(기가와트)를 기록하는 등 여름철 전력 총수요가 100GW에 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보통 여름철 전력 수요가 최대를 기록하는 고비는 여름휴가가 끝나고 대형 사업장이 일제히 가동하는 8월 둘째 주다. 아직 전력 예비율을 10% 이상 유지하고 있다지만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정부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할 정도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더라도 앞으로도 전력 수요는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전기차 보급 확대, 탄소 중립 추진에 따른 무탄소 전원 확대 등으로 전력 수요가 대폭 늘어날 분야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화성·용인·이천 등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인데 2050년까지 이 클러스터에 추가되는 전력 수요만 해도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인 10GW에 달한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무엇보다 전력망 확충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경북, 강원, 전남 등지에서 생산한 원전·풍력·태양광 등 전력을 주 수요처인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한 전력망이 턱없이 부족하다. 혈액을 공급할 혈관이 너무나 좁고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2008년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환경 단체와 주민의 반대, 지방자치단체의 비협조 등으로 전력망 건설이 난항을 겪고 있다. 동해안 원전·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에 공급할 동해안-신가평 초고압직류송전(HVDC) 건설 사업, 호남에서 생산한 신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 보낼 서해안 해저 HVDC 사업 등 계획보다 수년씩 지연된 사업이 한둘이 아니다.
전력망 구축 골든타임을 실기할 경우 자칫 ‘전력 대란’을 부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주민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전력망을 신속히 건설하기 위한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국회 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정쟁에 휘말려 폐기된 데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필요한 전력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재앙을 막으려면 이 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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