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간에 쫓겨 ‘전교조 합법화’ 판결했다”는 前 대법관의 고백

조선일보 2024. 8. 1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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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여하고 있다. /대법원

안철상 전 대법관이 서울대 법학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2020년 대법원의 ‘전교조 합법화’ 판결이 “선고 기일에 쫓겨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본질적 쟁점에 관한 판단을 회피한 것”이라고도 했다.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 합의체에서 내린 이 사건 결론은 대법원에 접수된 지 4년 만에, 소송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나온 것이다. 이렇게 오래 끈 사건인데도 대법관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시간에 쫓겨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해직 교사가 가입된 전교조에 대해 ‘법외(法外) 노조’라고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노동조합법은 해직자 등 근로자가 아닌 사람의 가입을 허용하면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1·2심은 이에 따라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정부 처분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법외 노조 통보 절차가 노동조합법에 근거 조항을 두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령을 통해 이뤄졌다는 이유였다. 지엽적 절차를 문제 삼아 전교조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안 전 대법관도 무효 쪽에 섰는데 당시 대법원이 어떤 경우에 법외 노조 통보를 할 수 있는지 등 핵심 쟁점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고 뒤늦게 고백한 것이다.

대법원 재판은 전원 합의체 재판, 대법관들이 4명씩 소부 3개를 만들어 재판하는 ‘소부 재판’으로 나뉘는데 거의 모든 사건을 소부에서 심리한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사건이 넘치면서 소부 재판이 파행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법관 한 명이 한 해에 처리하는 사건이 2년 전에 4000건을 넘어섰으니 재판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반면 전원 합의체는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중요 판례를 바꿀 때만 열린다. 보통 한 해 20건을 넘지 않는다. 그렇게 공을 들이는 재판인데 이 재판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대법원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역대 대법원장들이 여러 차례 역점 사업으로 상고심 개혁을 추진했지만 다 실패했다. 상고심 사건 중 단순 사건은 상고법원이, 중요 사건은 대법원이 맡는 방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도 임기 막판에 상고심 개혁 시늉을 냈지만 유야무야됐다. 우리 사회가 빨리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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