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잠재력의 최대치, ‘아레테’ 경지에 오른 한국 양궁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그리스 시대에는 아레테(arete)라는 개념이 있었다. 인간이나 사물이 본래의 기능과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경지, 즉 탁월함을 이르는 말이다. 의사가 아픈 사람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효과적으로 치료할 때, 그것이 의사의 아레테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레테를 인간의 본성과 재능이 지속적으로 탁월하게 실현되는 상태로 설명했다. 이를 통해 인간이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최고선(善)인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5개 전 종목 금메달 석권,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라는 경이로운 성과를 이뤄냈다. 한 국가가 특정 종목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탁월함을 드러내는 것은 세계 스포츠 역사에서도 유례가 드물다. 한국 양궁은 그야말로 아레테를 실현한 것이다.
한국 양궁의 지속적인 탁월함은 세 가지 아레테가 조화를 이룬 결과다. 첫째는 선수들의 아레테다. 인간은 본래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려는 본성을 지니지만, 자유의지를 발휘해 자기 한계를 넘어서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 되어 전력투구할 때 비로소 아레테에 가까워질 수 있다. 4.9mm의 극적인 차이로 금메달을 획득한 김우진 선수의 결승전은 양궁 선수로서의 아레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둘째는 행정 시스템의 아레테이다. 대한양궁협회는 다른 경기 단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벌이나 반목 없이, 투명하고 공정한 원칙 아래 합리적인 선수 양성, 훈련, 선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가 대표 선발전이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감독 또한 프레젠테이션 경쟁을 통해 선정된다. 모든 관계자가 오직 한국 양궁의 탁월함을 유지하겠다는 일념으로 협력했다.
셋째는 리더십의 아레테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40년간 한국 양궁 연맹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그러나 묵묵히 지원해 왔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뚝심으로 양궁 발전의 토대가 구축됐고, 정의선 회장의 치밀하고 세련된 리더십이 더해졌다. 정 회장은 한국 양궁의 본질과 미래를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며 선수들을 진심으로 아낀다. 파리 올림픽 출국 사흘 전, 정의선 회장은 진천선수촌의 선수들을 방문하면서 장어덮밥이 상하지 않을지 테스트하기 위해 배달 연습까지 지시했을 정도다. 그의 진정성은 양궁인들을 감동시키고 진정한 협력을 이끌어냈다.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보여준 압도적인 성과는 세계 양궁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은 6·25 전쟁 이후 최빈국에서 출발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루고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위태로운 분기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복합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모든 분야에서 차원이 다른 새로운 아레테를 추구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의, 기업은 기업의, 대학은 대학의 탁월함을 실현하려고 노력할 때, 나라 전체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탁월한 리더십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