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불링 피해자 '솔비' 권지안 작가 "처벌 강화, 피해자 보호 논의돼야"
12일 '"STOP, 사이버불링" 대한민국에서 사이버불링을 멈추기 위한 간담회'
'솔비'로서 피해 경험 공유한 권지안 작가 "피해자에 대한 대책은 없어" 비판
"사이버폭력은 인권 훼손의 문제, 피해자 보호 관련 사회적 공론화 시급해"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사이버불링(사이버폭력) 피해자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 피해자는 스스로 극복해야 하고, 혼자 뛰어서 해명해야 한다. 피해자는 하나의 소스가 되고 소비되어버린다. 나도 사이버렉카 관련 피해를 당했고, 사이버렉카는 나 때문에 조회수로 돈을 벌었다. 나는 너무 억울한데 사이버렉카는 조회수 장사를 위해 나를 또 사용한다. 결국 나는 인간으로 대우받는 게 아니라 계속 소비되는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권지안 작가, 가수 '솔비')
가수 솔비로 활동한 권지안 작가가 자신의 사이버불링 피해 경험을 공유하면서 혐오를 조장하는 시스템의 문제, 피해자 보호 조치의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STOP, 사이버불링” 대한민국에서 사이버불링을 멈추기 위한 간담회>(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관)에서 권지안 작가는 “2006년 가수 솔비로 데뷔하고 포털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내가 아닌 동영상에 내 이름을 붙인 가짜 동영상이 돌았다”며 “당시 유포자들을 고소했지만 억울한 피해자임에도 매우 수치스러운 조사 과정을 겪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비교해야 한다고 해 신체 일부분을 사진 찍기도 했다. 최초 유포자는 못 잡고 (영상을) 퍼다 나른 (가해자) 12명을 잡았는데, 당시 그냥 '재미 삼아' 퍼뜨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권 작가는 “지방에 있던 범죄자가 합의해줄 수 있냐며 나를 지방으로 오라고 한 적도 있다. 이런 절차가 너무 스트레스여서 아무것도 받지 않고 합의를 해줬다”면서 “그 사건으로 심각한 우울증,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우울증을 견디기 위해 미술을 시작했고 그림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왔다”고 전했다. 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온라인 세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법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이버불링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피해자들을 위한 보호 조치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버폭력은 인권 훼손의 문제, 피해자 보호 관련 사회적 공론화 시급해”
이번 국회 간담회는 지난 6월 서울 성북구 소재 갤러리에서 열린 '사이버불링' 전시가 계기가 됐다. 사이버폭력 문제를 다룬 이 전시는 전혜연 전시기획자가 기획하고 권지안 작가 등 6명의 한·중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에 앞서 성북구를 지역구로 둔 김영배 의원이 참여한 '사이버 불링, 그 심각성 이대로 괜찮은가' 라운드테이블을 열기도 했다.
청소년을 상대로 한 사이버불링도 심각해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발표한 2023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40.8%가 사이버폭력 가해 혹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 학생인 A씨는 간담회에서 본인이 직접 겪은 사이버불링 학교폭력 피해 사례를 공유했다. △카카오톡 단톡방에 초대해 욕설을 퍼부으면서 피해자가 대화방을 나가면 다시 초대 △사진을 공유하면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친한 친구'만 볼 수 있는 기능을 활용해 특정인 '저격' 글을 업로드 △익명 질문에 유저가 답변하는 '에스크'에서 욕설·협박·조롱·성희롱 등의 사례들이다.
A씨는 “누가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다닐지, 어떤 소문을 퍼뜨릴지 고민하고 집착하게 됐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눈치보게 됐다”며 “가해자들에게 사과를 요구했을 때도 '그래 미안하다 됐지'라는 반응이었고, '너가 원인 제공을 했겠지'라고 말할 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진실을 밝힌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그들에게 관심거리는 자극적인 추측뿐이다. 나와 같은 피해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백형 서울동작경찰서 SPO(학교전담경찰관, School Police Officer)팀장은 “가해자들은 사이버불링을 단지 놀이로 인식하고 가해자들 간의 유대감과 우정을 돈독히 하는 행위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심각하다”며 “사이버불링의 심각성과 피해를 인식하게 하는 교육이 절실하며, 무조건적 법적 처벌보단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준 숙명여대 인문학연구소 교수도 “사이버폭력은 근본적으로 인권 침해, 훼손의 문제”라며 사이버 폭력에 대한 예방과 피해자에 대한 보호, 치유의 사회적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사이버불링 대응책이 교육부의 청소년 학교폭력 대책에만 집중돼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준 교수는 “국내 10여 개 기관이 적극적으로 사이버폭력 관련 대응 정책을 펴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청소년 학교 폭력 예방 관련 교육부 산하 기관들이 담당하고 있다”며 “최근 사이버렉카 관련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처럼, 사이버폭력은 단순히 청소년 학교폭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 실현 등에 있어 교차할 수 있는 범부처별 논의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해 최소영 교육부 학교폭력대책과 연구관은 “교육부가 주관이 돼 여가부, 방통위 등을 비롯한 관계 부처, 유관기관과 함께 범부처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딥페이크 등 신종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부처별 협업 과제를 발굴, 공동 대응 강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청소년들의 사이버폭력은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회적,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문제다. 교육부는 관련 부처와 적극 협력해 보호 대책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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