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도 낮춰주는 게 어딘데···그늘막마저 지자체별 빈부격차
다른 폭염대책들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다수 시민들의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그늘막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름철 거리 풍경이다. 그늘막은 폭염 시에 2도 넘게 온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쉽고 간단하면서 효과도 큰 대책이지만, 지역별로 편차가 크고 지역으로 갈수록 더 찾아보기 어렵다. 냉방기를 갖추지 못했거나 노후 주택에 살고 있는 고령 취약계층에게 필수적인 무더위쉼터 역시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폭염대책의 지역 격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 강릉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32.4도까지 올라갔던 지난 10일, 강릉역에서 도심 방향으로 건너기 위해 서있던 횡단보도 주변에선 나무 그늘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멀찍이 다른 횡단보도 주변에 설치된 작은 스마트그늘막에서는 관광객 6~7명이 좁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관광객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려 하는데 그늘이 없는 횡단보도에 서있다보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면서 “그늘막이나 가로수 그늘만 있어도 조금은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찾은 전남 나주도 비슷했다. 나주역과 나주시청이 있는 도심 지역엔 곳곳에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도심을 벗어나자 그늘막을 찾기 힘들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나주로 이사 온 A씨(30)는 “나주는 시골이다보니 건물이 다 낮아서 도로에 그늘이 없다”면서 “그러다보니 원래 양산을 안 쓰는데 여기선 꼭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은 군데군데 카페도 많고 지하시설도 있어서 해를 피할 수 있는데 나주는 차가 없으면 다니기가 힘들다”고 했다.
■잠시 서 있을 그늘막도 지역별로 천차만별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강릉은 2012~2020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서 온열질환자의 길가 발생이 가장 많았던 도시다. 강릉은 1위로 34명이었고, 의정부 33명, 대구가 30명으로 뒤를 이었다. 강릉 인구가 약 20만8000명, 의정부 약 46만명, 대구 인구가 약 236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강릉은 인구 대비 온열질환자의 거리 발생 비율이 높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여름에도 지난 5월20일부터 8월10일 사이 강릉에서는 온열질환자가 23명 발생했는데, 이는 강원도에서 가장 많은 수다. 전남 나주는 충북대와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진이 지난해 발표한 ‘사회불안 지표를 반영한 폭염 취약성 평가’ 논문을 보면 전국에서 6번째로 취약한 도시로 선정된 곳이다. 인구는 약 11만7000명이다.
강릉에서 그늘막 아래 그늘과 그늘이 아닌 곳의 온도를 비교해보니 각각 33.1도와 35.3도로 2.2도가량이 차이 났다. 나주에서도 각각 29도와 31.5~31.7도로 2도 넘는 차이를 보였다. 폭염 시기의 2도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다. 기온이 1도 오르면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2% 높아지며 뇌졸중 사망자가 2.3~5.4% 증가하고, 급성 심정지 발생률이 1.3%씩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격차가 컸다. 나주 혁신도시와 강릉 도심지역 등에서는 비교적 그늘막이 많이 설치돼 있었고, 버스터미널 등에는 쿨링포그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주역에서 시청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그늘막이 6개 보인 반면, 시청부터 나주 향교까지는 약 40분을 걷는 동안 단 한 개만 설치돼 있었다. 나주시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의 그늘막 설치에 대한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주 금성교 앞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던 주민 이규례씨(86)는 “그늘이 없어 밖에 못 나올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저번에 나왔다가 타 죽겠다고 했다. 숨을 못 쉬었다”면서 “도로에 그늘이 없어 왔다갔다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씨 옆에서 부채질을 하던 한 남성은 “혁신도시나 가야 (폭염 저감)시설이 있다”면서 “평생 가장 덥다”고 거들었다. 나주시에 설치된 그늘막은 총 222개지만 절반 이상이 혁신도시에 집중됐다. 나주시의 노령인구 비율은 24.5%로 이들 대부분이 혁신도시 바깥에서 거주하나 그늘막은 젊은층이 많은 곳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강릉에선 그늘막의 그늘이 하루 중 가장 더운 오후 2~5시 사이에는 건물 그늘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많았고, 그늘이 차도에 들어가버리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불과 1~2분 거리에 그늘막 3개가 연속으로 보이기도 했다. 모두 현지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설치한 사례다.
지자체들은 행안부 지침에 따라 이용자가 많고, 인도의 폭이 3m 이상이고, 보행에 지장이 없으며, 차량 운전자의 시야 확보에 지장이 없는 곳 등을 선정해 그늘막을 설치하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가 폭염 대응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또 재정 여건에 따라 설치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온열질환자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폭염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그늘막 설치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강릉시에 설치된 그늘막의 수는 스마트그늘막을 합해 132개로, 인구가 절반가량인 나주시의 222개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인구가 28만명인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276개에 비해서는 절반 미만이다.
서울의 경우도 전체 그늘막 3444개 가운데 강남 3구에는 각각 200개 이상이 설치돼 있다. 반면 마포, 서대문, 강북구 등은 70개 남짓에 불과하다.
폭염대책을 적극적으로 세우는 지자체로는 서초구나 대구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그늘막을 선보인 서초구의 경우 그늘막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쿨링벤치까지 설치하고 있고, 워낙 더워 별명이 대프리카인 대구시도 그늘막, 쿨링포그 등의 수를 늘리고 있다. 서울 성동구, 중랑구, 은평구 등은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지하철역 부근이나 공원 등에서 생수를 배포하기도 한다.
무더위쉼터는 실내에서 주로 생활하는 고령자들을 위한 대표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더위쉼터는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에 지정만 해놨을 뿐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일부 지역에서는 노인회 회원만 이용할 수 있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무더위쉼터까지 가기가 너무 먼 경우도 있고, 공원 정자 등으로 지정된 야외 무더위쉼터는 폭염 시에 별다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폭염대책, 취약한 지역부터 강화해야
정부·지자체의 폭염대책이 미흡한 상황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폭염 증가로 인한 악영향이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 충청, 전라, 경상도 등 상대적으로 폭염대책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에서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대도시는 폭염 영향이 크더라도 이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진 반면 중소도시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충북대와 한국환경연구원 등 연구진의 논문을 보면 폭염취약성이 높은 도시 10위 내에는 호남권의 중소도시들이 대거 포함됐다. 전남 함평군은 폭염·열대야 일수가 많은 데다 노후주택이 전국 지자체 가운데 5번째로 많고, 재정자립도는 16번째로 낮다는 점 등에서 폭염에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북 김제, 전남 나주와 보성, 신안, 강진, 진도 등도 취약한 지자체로 꼽혔다. 연구진은 폭염 취약성을 폭염 노출 지수와 민감도 지수, 사회불안 지수, 적응력 지수 등을 토대로 산출했다. 권역별로는 전라도와 충북 지역이 가장 폭염에 취약했고, 그다음이 경상도였다.
공주대 연구진이 지난해 9월 한국사진지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도 폭염에 따른 고령자의 사망률이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였으며 특히 충청과 전라 내륙의 중소도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별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인 폭염대책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 간의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재정적 수단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종화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역의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그늘막 설치 등과 같은 가장 대표적인 폭염 대비책도 지역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되는 일이 발생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지역의 제도적 형평성에 대한 부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온열질환 ‘보이는 불’부터 끄는 지자체···기후위기 대응 관점 장기 대책 세워야
정도를 더해가는 폭염은 곧 기후위기의 결과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대응 관점에서 폭염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내놓는 폭염대책은 대부분 온열질환 대응 등 단기 대책에 치중돼 있다. 지자체별로 폭염대책과 예산이 제각각이라 격차도 크다. 정부와 지자체 등이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12일 국토연구원이 2022년 12월 펴낸 ‘지자체 폭염대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 적응대책 세부시행 계획상 지자체의 폭염 관련 사업은 총 630개로 집계됐다. 이 중 건강 부문이 364개로 57.8%를 차지했고, 농업·축산 부문이 13%(82개)로 뒤를 이었다. 적응·산업·에너지 부문은 3.2%, 감시·예측 부문은 0.3%에 불과했다.
연구를 진행한 박종화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결국 기온을 낮추기 위해선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녹지를 확대해야 한다”며 “가로수를 심는다거나 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중장기적인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책이 ‘폭염으로 인한 질병’에만 집중한 초보적 단계에 머물러 있어 폭염의 근본적인 원인을 낮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부연구위원은 녹지축 조성, 담수시설 확보 등을 언급하면서 “이는 탄소중립 조성이라는 목표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기후위기 속에서 폭염 노출과 그로 인한 영향을 낮춤으로써 도시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자체별로 각각 폭염대책을 따로 수립하고 있어 예산이 부족한 지역은 적극적 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폭염대책 사업의 예산을 보면 도시 지역은 5년간 평균 373억3550만원, 농촌은 평균 97억3690만원의 예산을 계획했다. 가장 많은 사업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도시와 농촌을 비교하면 약 1100억원 차이가 났다. 연구진은 “도시와 농촌의 폭염대책 사업 수와 사업예산 격차는 지역적 여건에 따른 재정자립도 차이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위원은 “지자체별로 폭염대책을 수립하고 있으나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피해 규모나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제한적인 경우가 있고, 지역별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폭염대책의 지역 간 격차가 존재한다”면서 “이를 보조하기 위한 중앙-지방, 광역-지방, 지방-지방 간의 거버넌스 구축 및 재정적 수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폭염에 취약한 지역과 취약계층의 기후위기 적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고려대와 서울대 등 연구진은 2022년 9월 환경정책학회지에 실은 논문에서 “폭염에 취약한 지역을 선정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대응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도시화율이 낮은 지역에서는 “이용자의 이동거리를 고려한 폭염대피소 운영, 이동형 그늘막 설치 등 폭염 노출 자체를 줄이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환경연구원도 찾아가는 폭염도우미 서비스, 무더위쉼터 셔틀버스 운행 등을 제시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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