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그 많던 기부금은 어디로 갔나
최근 유명인이 기부금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중에는 거액을 낸 연예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하춘화, 아이유, 장나라, 션과 정혜영 부부, 김제동, 김장훈, 박상민, 송혜교 등이다. ‘가왕’으로 불리는 조용필도 그동안 모은 재산을 기부한다고 한다.
재난재해 피해자를 돕기 위한 수재의연금 같은 기부금, ‘불우이웃’을 위한 후원, 대학교에 대한 기부금 등은 쉽게 접하는 소식이다(물론 션의 경우는 독특하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집을 마련하는 데 지속해서 주동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은 기부금 용도가 다원화되면서 동물 구조, 미혼모 돕기도 눈에 띄고, ‘독도 알리기’ 같은 활동에 후원금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기부자들의 이타적인 통 큰 결단에 감탄, 감동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을 피할 길 없다. 왜냐하면 상당한 기부금이 선량한 기부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쓰이거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 관점에서 보면 빈곤층, 소년소녀 가장, 쪽방촌의 노인 등 소외된 자들을 돕는 게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국내외 자선단체들이 만든 TV 광고는 주로 부모 잃고 자란 가난하거나 아픈 아이들의 비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걸 보면 가슴이 쓰라려서 ARS 번호를 누르지 않기 어렵다.
하지만 자선단체는 기부금을 받아서 매일 돈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훈훈한 기사가 넘치는 것은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표지(標識)가 아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자선 및 구호 활동은 그런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닌가. 국가가 개별 시민, 봉사 및 자선단체에 책임을 전가했다는 얘기다. 국내에도 지부가 있는 글로벌 구호 단체들도 규모가 크고 체계적이지만 그 효과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전문가들도 있다.
기부금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 특히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세상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시민 사회운동 단체에 기부금을 주는 유명인사는 거의 없다. 정당에 대한 기부금 등을 일반시민들이 꺼리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내게 발언권이 생긴다면 나는 주저 없이 믿을 만한 시민운동단체를 체계적으로 후원하는 방법을 추천하겠다. 이들이야말로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적으로 나서거나 정부나 기업에 압력을 가할 윤리적 힘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항시적으로 재정이 힘든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는 없다. 독립성과 신뢰를 유지하려는 단체에는 평범한 시민회원들의 크고 작은 지속적 후원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후원한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활동가들에게 생활 보조금을 준다든가 그들이 지치거나 아플 때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뒷받침 없이는 활동가들은 몇년 안 되어 탈진하고 이직하기 쉽다. 활동가 개개인을 위한 재정적 지원 제도가 한국에는 거의 없다. 몇몇 재단에는 그런 것이 있지만 그 규모는 전국에 퍼져 있는 크고 작은 시민단체와 활동가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규모의 후원이 지속, 축적된다면 활동가들의 안식년, 안식월, 대학(원) 무료 진학 같은 제도도 실현 가능하다.
제대로 된 시민단체/활동가를 지원하는 것은 사회의 건강한 변화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당장에 그것은 표시가 나질 않는다. 반면에 ‘불우이웃’ 돕기 이벤트는 매스컴에 어김없이 나간다. 특히 매년 초겨울에 긴 띠 매고 나와서 연탄 나르는 정치인, 연예인 등의 유명인을 뉴스 끝에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업의 자선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럴듯한 내용으로 포장된 활동이지만 그것은 사회를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게 하지 못한다. 대체로 자선활동은 자족적이고 효과가 일시적이며 감상적인 인도주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디서 들은 말을 약간 수정해서 표현을 하자면 “정의가 수반되지 않는 한, 자선은 기만이다”.
구조적 변화를 꾀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는 중장기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그것은 결국 가난하고 힘겹게 살고 있는 ‘동료, 시민들’의 삶과 우리 공동체를 개혁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저명인사가 이들 단체에 목돈을 기부하는 게 유행처럼 번진다면 세상은 어떤 곳이 될까?
권혁범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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