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2300억 국제배상금, 박근혜·이재용 책임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1일 영국 법원에서 한 패소 판결문을 받아야만 했다. 작년 7월18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기자회견까지 열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영국에 제기한 사건이다. 한 전 장관은 대한민국이 미국계 펀드 엘리엇에 약 130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중재판정에 불복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방법으로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던 것이다. 영국 법원 판결은 1년 만에 나온 거절 답변이었다.
한 전 장관은, 작년에 불복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이 사건을 수사해서 잘못을 바로잡는 데 실질적으로 관여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패소 판정을 내렸던 국제중재판정부에 관할권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의 대사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살면서 아끼면 안 되는 비용이 몇 가지 있다’고. 그런데도 왜 영국 법원은 한 전 장관의 신청을 기각했을까.
35쪽에 이르는 영국 법원 판결의 핵심은 간결하다. 미국계 펀드인 엘리엇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를 국제배상 중재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국제배상 회부는 한국 정부가 한·미 FTA를 미국과 맺으면서 동의해준 내용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국제중재판정부가 관할권이 없다는 근거로 삼은 한·미 FTA 조항에 대해서는 관할에 관한 조항이 아니라고 했다.
한 전 장관은 지금 말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돈은 제 일을 멈추지 않는다. 엘리엇에 지급해야 할 배상금은 약 1500억원으로 늘었다. 연 5%의 이자가 복리로 붙는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5월, 메이슨이라고 하는 미국계 펀드에도 약 800억원을 배상하라는 중재 판정을 받았다. 메이슨과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다.
2300억원의 국제배상금을 누가 내야 하는가. 엘리엇과 메이슨이 문제 삼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사적으로 이익을 본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들이 책임지게 해야 한다.
메이슨 사건의 국제중재판정부는 명확하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에 이 회장에게 삼성 승계 계획을 지원하는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청탁했다. 이 회장을 위하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하게 했다. 당시 공단은 엘리엇과 메이슨과 같이 삼성물산 주주였다. 박 전 대통령은, 공단의 합병 찬성으로 합병이 승인된 후에 부당한 이익을 보상받았다. 이러한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삼성물산 주주 메이슨에 중대하게 불공정하다. 한·미 FTA 위반이다. 이것이 메이슨 사건 판정 내용이다. 국제중재판정부는 메이슨이 입은 손해를 대한민국이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2015년 당시 메이슨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의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했다.
특히 국제중재판정부는 이 회장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과의 사이에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는 대가로 합병을 지원할 것이라는 공동의 인식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법률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공동불법행위라고 한다. 이 경우, 불법행위에 공동 책임을 진다.
나는 법무부가 영국 법원 판결에 대해 항소 절차를 밟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행히 영국 법원의 판결에는 한국의 항소를 허락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독자들도 이제 알겠지만 항소를 하더라도 영국 법원의 심리 대상은 관할권 문제라는 매우 형식적 문제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가 2300억원에 대하여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에게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것과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올해 안에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을 바로잡는 데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고 말했던 한동훈 대표도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송기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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