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주연 만들어낸 수많은 조연들
양궁은 세계 최강임을 입증했다. 여자 단체전 10연패, 3관왕 두 명. 3관왕 임시현은 “제대로 쉰 날이 없다”고 말했다. 금메달 5개 싹쓸이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 치열하고 투명한 경쟁, 현대차그룹의 든든한 지원이 엮은 합작품이다.
여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단체전에서 세계 1위 프랑스를 꺾고 은메달을 따냈다.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단체전을 3연패했다. 단신의 한계, 노출된 전력을 많은 땀으로 극복한 결과다.
태권도는 금 2개, 동 1개로 도쿄 올림픽 ‘노골드’ 충격을 씻었다. 도전자 자세로 철저하게 준비했고 겸손하게 훈련한 덕분이다. 세계 5위, 4위, 1위, 2위 순으로 꺾고 우승한 세계 24위 김유진은 “고된 훈련을 견딘 나를 믿었다”고 말했다.
탁구는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수확했다. 신유빈 등은 “언니, 동생, 지도자, 협회 모두 한마음으로 노력한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독하게 훈련한 유도는 은 1, 동 1개를 따냈다. 혼성 단체전 동메달이 값졌다. 마지막 보루 안바울은 윗 체급 선수와 연장전 끝에 두 번이나 이겼다. “모두 죽을 만큼 훈련했다”는 황희태 감독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사격은 예상을 뛰어넘는 금 3, 은 3개를 쐈다. 반효진(17) 등 2000년대 태어난 어린 선수들은 떨지 않았고 겁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부족한 경험과 연륜을 꾸준한 훈련과 놀라운 집중력으로 극복한 메달이었다.
배드민턴 안세영은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부상 등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열심히 훈련한 결과다. 역도 박혜정은 지난 4월 암과 투병한 엄마를 보낸 슬픔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은메달을 일궜다.
한국은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 32개(금 13, 은 9, 동 10개)를 따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대회 이후 최소 규모 선수단(21개 종목·144명)으로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16위에 머문 순위도 8위까지 올랐다. 지난 2주 동안 종목을 가릴 것 없이 이어진 메달 행진은 끝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올림픽은 끝났고 메달리스트들만 남았다. 반짝이는 메달은 뒤에 가려진 고통, 노력, 희생, 단합, 비난, 실패 등이 있었기에 받을 수 있었다. 노력했다고 모두 메달을 따는 건 아니지만 메달리스트 중 노력하지 않은 선수는 없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주인공에게 쏠린다. 주인공을 도운 조연은 잊히기 일쑤다. 대표팀을 오간 수많은 선후배, 이름 없는 스파링 파트너, 선수 눈치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며 훈련을 진행한 지도자, 늦은 밤까지 자기 몸보다 선수 몸을 더 챙긴 트레이너, 훈련 및 대회 참가를 지원한 행정 직원, 뭉칫돈을 대준 후원사는 쓴 웃음 속에서도 참고 견뎠다. 오직 주인공만을 위한 이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메달도 없었다.
선수는 씨앗이다. 씨앗은 선배들이 눈물과 땀으로 갈고 지나간 밭에서 발아했다. 지도자, 협회의 노고와 투자는 거름과 양분이 됐다. 물, 바람, 햇볕 등 사회적 환경이 더 좋았다면 열매를 더 많이, 더 크게 맺었을 것이다. 세상에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없다. 메달을 땄든 못 땄든, 이 모든 게 한국 사회 전체가 짊어질 몫이다.
김세훈 스포츠부 부장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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