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윤석열, 한동훈, 이재명의 돌멩이 정치
21대 국회 임기 말인 지난 5월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양당 입장은 상당히 접근했다. 이재명이 ‘받는 돈’에 관한 국민의힘 안을 수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합의를 거부했다.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안을 냈을 때도 국민의힘은 반대했다. 한동훈이 특검 추천인을 대법원장으로 하는 대안을 냈을 때는 민주당이 반대했다. 민주당이 22대 국회에서 다시 특검법안을 발의하면서 한동훈 안도 논의할 수 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국민의힘이 반대로 돌아섰다.
의대 증원, 저출생 대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당 사이 정책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게다가 양당에는 김종인 발자국이 있다. 양당을 오가며 비대위원장을 한 그는 양당 정강정책을 모두 손봤고, 그 결과 비슷비슷해졌다. 그런데도 양당은 합의를 피하려 무진 애를 쓴다. 주요 쟁점을 타결짓는 사고가 날까봐 그런 것 같다.
이념·정책 중심 경쟁, 그리고 조정·타협이라는 정치과정은 정치 양극화·팬덤정치 심화로 사라졌다. 민주주의에서 지도자는 시민 의사를 반영해 정책을 만들고 실행함으로써 지지를 확대 재생산한다. 반면, 지지자가 시민 의사의 결정체인 당 정책을 부정하면 지도력을 상실할 수 있다.
팬덤정치에선 이 지도자-지지자 관계가 물구나무선다. 지도자가 결심하면 지지자는 따른다. 지도자가 나의 가치·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도자의 가치·이익을 대변한다. 지도자는 이념·정책이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시민은 자유를 잃는다.
이는 감세 문제에서도 확인된다. 돈 쓸 일은 많고, 재정은 적자인데도 부자감세를 추진한다는 집권세력 입장에 이재명은 선뜻 동의를 표명하며 당 정체성을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팬덤은 반발 대신 침묵으로 지지한다. 지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다.
팬덤정치는 특정인에게 개인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 인물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빚어낸 환상이지만, 일체감이 이념·정책·민심을 대체한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실재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비전을 공유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우리 편이 승리하는 일이 된다.
이건 온전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포퓰리즘도 아니다. 기득권 대 대중의 대립 구도를 갖는 포퓰리즘은 대중에 호소하며 기성 제도와 질서를 무시하지만, 그래도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한다. 제조업 쇠락으로 경제적 박탈감을 느낀 저학력·저소득 백인을 대변하는 미국 트럼프 포퓰리즘도 그런 측면이 있다. 한국 정치에는 이런 것도 없다. 대중의 불만을 조직하고 대표하기는커녕 정치계급들이 기득권 싸움을 하느라 대중을 소외시킨다. 팬덤 밖 시민을 시민권 없는 시민으로 만든다.
이런 모습은 마치 돌멩이 같다. 돌멩이는 다른 세계로부터 고립된 채 저들끼리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있는 존재다. 집권하면서 선거연합을 해체한 국민의힘은 극우적 동질성으로 획일화하고 있다. 강성 팬덤에 닫히고 일극 체제에 갇힌 민주당은 너무 단단해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돌멩이는 더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다. 이미 총선 심판도 받고, 당 대표를 선출했거나 선출 중인데도 정국은 변화가 없다. 국민의힘은 총선 이후 지지율이 하락할 만하지만, 권력 상실의 불안감에 따른 결집 현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했으면 지지율이 오를 만하지만, 제자리를 맴돈다.
요즘 정책 토론이니 여·야·정 협의체 구성이니 하며 대화를 시도하지만,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이미 영수회담을 해봤다. 약장수는 돌멩이가 섞이는 걸 보여주겠다며 사람을 모을 수는 있겠지만, 섞이면 기적이거나 사기다. 돌멩이는 섞이지 않는다.
두 세력이 손에 쥔 건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란 물리적 힘뿐이다. 민주주의는, 두 제도가 경쟁과 협력 사이 균형을 이뤄야만 기능하는 체제다. 상대를 설득하고 자기 권력을 정당화할 소프트파워가 없는 제도는 돌멩이에 불과하고, 돌멩이끼린 부딪칠 수밖에 없다. 두 세력은 기어코 법안 단독처리, 거부권 행사를 19번 반복했다. 서로를 향해 19번 돌팔매질한 것이다. 그 탓에 동네 유리창은 다 깨졌다. 국가 권위, 상호 존중과 협력의 가치,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 모두 깨졌다.
기후위기, 사회 양극화, 인구소멸, 지방소멸, 고령화와 같은 큰 질문 앞에 돌멩이 두 개가 놓여 있다. 생각할 줄 모르는 돌멩이를 어찌할지 우리는 이제 생각해야 한다.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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