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과 삶]경제단체들은 공포를 조장하지 마라
최근 재계의 입장문들을 보면 재벌을 비롯한 경제계가 우리 사회의 약자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확실해지자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지난 8월1일 국회 본청 앞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반대 경제계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국내 중소 협력업체는 줄도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경제 망치는 노조법 개정 반대’ 피켓을 들었다.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에 거센 반발
8월5일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경제지들은 일제히 경제6단체 입장과 동일한 사설들을 내보냈다. 파이낸셜뉴스는 “가령 현대차의 경우 본사가 5000여개 하청업체와 각각 임금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걱정한다. 노조 천국이 되고, 하청업체들이 모두 파업에 나설 것이니 기업 활동이 거의 마비될 것이며, “이런 법안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도 과감하게 내지른다. 그러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한다. 파이낸셜뉴스처럼 과감한 주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넘쳐났다.
이런 경제계와 경제지, 보수지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수직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열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 산업생태계는 수천개의 하청과 협력업체 위에 원청이 군림하면서 수직적 위계를 형성해왔다. 원청은 임금부터 근로조건까지 세세하게 하청·협력업체에 요구한다. 심지어 하청이나 협력업체에 노조가 생기면 계약이 무효라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을 정도다. 현실이 이러하니 보수적이고 친기업적인 법원마저도 원청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인정하는 판결을 거듭 내게 됐다. ‘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횡포를 하청·협력업체의 노사관계에도 적용한 것이다. 수많은 하청·협력업체 위에 군림하는 원청의 문제를 덮어두고는 우리 경제 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내정한 김문수 전 경사노위 위원장은 “불법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 “민사소송을 오래 끌수록 (노동자) 가정이 파탄 나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특효약 때문에 2003년 배달호 열사 이래 숱한 노동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정까지 파탄 나게 만드는 잔인한 손배가압류란 폭탄을 함부로 사용해온 재계가 갑자기 엄살을 부리고 있다. 노조 파괴를 전문으로 하던 ‘창조컨설팅’의 매뉴얼에 따라 잔인하게 노동조합을 파괴해왔던 관행은 잊었단 말인가.
경제단체, 과거 인정하고 반성해야
이번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 조장법’이라고 강변하지만, 노동조합이 파업에 나서는 경우는 대부분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단체교섭을 기피했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 심지어 고용노동부와 국정원까지 기업 편을 들고, 법원마저 그래왔던 게 이 나라의 노사관계였다. 힘 있는 기관과 대부분의 언론들이 재계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왔던 게 현실 아닌가.
도리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의 힘을 제어하는 것은 하청·협력업체들에 숨통을 틔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원청이 지금까지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포기하고, 하청·협력업체가 자율적으로 노사관계를 형성하도록 뒷받침하면 산업현장의 평화가 오지 않을까.
지금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노동자들을 장시간·저임금 상태로 묶어두고, 그들이 작업 중 위험 상황에 처해도 작업을 중지하지 못하게 하여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도록 해온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그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지속적으로 권고한 국제기준을 따르고, 대법원이 수차례 판례로 확정한 내용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또 고용형태가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헌법상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법안이다.
경제6단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 잘못된 노사관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는 노사관계 형성을 위해 노란봉투법에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지 말고, 법안을 공포하라. 그래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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