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이념 공세 대신 국민 서사를

기자 2024. 8. 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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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족의 서사든
그것은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지워지고
또다시 쓰이는 과정 속
끝없이 변화하게 된다
그렇게 집단 내러티브를
다시 쓰게 만드는 원천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이다
한국의 내러티브를 맡는
국책기관들은
과거를 보지 말고
지금을 보아야 한다
또 험한 파도로 밀려오는
미래를 보아야 한다
우리의 서사는
우리 스스로 써야 한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다. 그래서 위대하고 강력하다. 세상의 어느 공동체 어느 집단적 정체성 중 상상의 산물이 아닌 것이 있는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이유 말에 따르면, “우리들 현실 생활의 4분의 3은 상상과 허구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그 상상과 허구가 사람들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 깊이 파고드는 설득력과 감화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성원들 개개인에게는 자신의 존재와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집단 전체에게는 모두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는 응집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요건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상상은 막연한 몽상이나 허황된 과장이나 편벽된 이념에서 나오지 않는다. 진실과 사실에 기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고, 또 거기에서 우리 모두가 미래로 나아갈 방향의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일관된 ‘내러티브’, 즉 서사의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이러한 내러티브가 출현하기 전까지 무수한 학자들, 사상가들, 예술가들의 고민과 논쟁이 쌓이고 숙성되고 또 사람들의 마음과 머리로 파고들어가는 긴 시간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이는 결코 등한시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들 “현실 생활의 4분의 3”을 채워줄 상상과 허구를 간절히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이겨낸 집단은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며 힘을 모아가는 공동체로 번성할 것이고, 여기에 실패한 집단은 사분오열되어 힘을 잃고 서서히 쇠약해져가며, 집단의 힘과 보살핌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약자들은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아일랜드의 슈퍼 록밴드 U2의 리더인 보노(Bono)가 전해주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내러티브를 들어보자. 아일랜드는 북대서양 한 귀퉁이에 놓여 거센 폭풍우에 시달리는 보잘것없는 돌덩어리이며, 무수한 외부 침략에 시달리는 살기 힘든 곳이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800만에 달하던 인구는 그후 이곳을 덮친 끔찍한 기근과 대규모 이민으로 20세기 중반 3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남은 이들은 또 지겹게 계속되는 내란 위협 속에서 20세기를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라 바깥으로 퍼져나간 아일랜드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에게 소중한 자산을 물어와 축적시켜 준다. 단지 그들이 땀 흘려 일해 벌어들인 돈을 송금한 것만이 아니었다. 유태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일랜드 사람들 또한 “물체보다는 아이디어를 운반하기가 더 쉽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깥세상 곳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문화와 어떤 사상이 있는지, 또 세상 전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의 소중한 정보와 지식을 아일랜드에 남은 사람들에게 전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아일랜드에는 종교, 문화, 문학, 예술 등에서 깊이와 무게를 갖춘 훌륭한 저작과 작품들이 축적됐다.

감동적인 아일랜드의 내러티브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정신적인 축적이 이루어진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산업 기술의 진화와 함께 ‘탈물질적인’ 정보와 지식이 압도적인 중요성을 갖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이 전 세계에서 각광받게 된 것이다. 경공업 위주였던 아일랜드 산업 구조는 이제부터 하이테크와 지식 정보 산업 중심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들은 이러한 산업 전환을 위해 여러 정책과 제도 변화를 통해 외국으로부터의 투자뿐 아니라 고도의 지식과 정보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산업의 기업들을 적극 유치했다. 또한 동시에 아일랜드 젊은이들이 이러한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새로운 청년 문화 육성을 장려했다. 보노의 표현에 따르면, “한때 성자들과 학자들의 땅이었던 아일랜드는 이제 죄인들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땅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세금 수입을 정부가 교육, 의료, 도로, 각종 사회적 인프라에 과감하게 투자하여 아일랜드는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이제 아일랜드는 전 세계로 이민자들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나갔던 이민자들이 기쁘게 되돌아오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보노는 강조한다. 이러한 아일랜드의 내러티브는 누군가 다른 외부자들이 아일랜드 사람들을 위해 대신 써준 이야기가 아니라고. 아일랜드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내 스스로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에서 자신들의 집단적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신화’를 얻어내고 있다고.

우리나라에도 독립기념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을 위시하여 우리 전체의 집단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연구와 활동을 맡은 정부 산하의 국책기관들이 존재한다. 이런 기관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입맛에 맞게 한가한 이념 전쟁이나 벌이라고 있는 게 아니다. 건국절이 1919년 3월1일인지, 1945년 8월15일인지, 1948년 8월15일인지로 싸우라고, 또 이승만이냐 김구냐 혹은 그 밖의 누구냐라는 지긋지긋한 ‘국부’ 타령이나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사실과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앞에서 말한 바의 제대로 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 전체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데에 연결되는 한에서이다.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가지고 더 다툴 문제가 있다면 학계라는 장 속에서 논쟁과 토론으로 풀어가야 할 일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학계를 뛰쳐나와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국가 기관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면, 이는 우리의 소중한 집단적 토론을 한없이 과거로 퇴행시키는 일이다.

우리의 내러티브 스스로 써 나가야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내러티브는 첫째, 이념과 관점의 차이를 넘어서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여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지금의 우리 현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어떤 미래를 짜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국책기관들은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관들의 장으로 들어서는 인물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특정한, 그것도 학계에서 심각한 논란을 빚는 편벽된 입장과 이념의 인물들 일색이라는 사실을 보면서 실망감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품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가 써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배층 행태까지 포함해, 또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했는가의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20세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고 지구화에까지 현명하게 대처하여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매력적인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지만, 21세기에 들어 지구적인 생태 위기, 급격한 산업구조 전환,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인구와 출생률의 변화, 사회의 분열과 갈등 등 여러 두려운 도전에 처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위정자들은 이러한 위기 앞에서 국민들의 마음과 뜻을 모을 수 있는 민족 서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뒷전으로 하고 이념적 분열만 일삼아 나라 전체가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21세기의 현실에 의식이 깨어난 한국인들은 이러한 퇴행적이고 소모적인 이념 분열에 빠지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밝혀줄 수 있는 새로운 민족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고.

보노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내러티브도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당연하다. 어느 민족이나 어느 집단의 서사든 그것은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지워지고 또다시 쓰이는 과정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집단의 내러티브를 다시 쓰게 만드는 원천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의미와 그 내러티브가 공산권 몰락 이후 얼마나 극적으로 다시 쓰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라. 대한민국의 내러티브를 맡는 국책기관들은 과거를 보지 말고 지금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험한 파도로 밀려오는 미래를 보아야 한다. 우리의 서사는 우리 스스로 써야 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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