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42만 채 만큼 빨라진 소멸시계

이노성 기자 2024. 8. 1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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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풀어 서울 집 공급…수도권 일극체제 심화 가속
균형발전 포기 잘못된 신호…국가 지속가능성 훼손 우려

윤석열 정부가 또 비수도권을 내팽개쳤다. 말로는 ‘지방시대’인데 교통·일자리·부동산 모두 서울 중심이다. 지난 8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 정책은 서울 공화국을 강화하는 ‘끝판왕’이다. 2029년까지 수도권에 42만7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의도는 분명하다. 수도권 집값을 잡는 대신 지역 소멸은 감내하겠다는 것 말곤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더 기막힌 것은 12년 만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대폭 해제해 8만 가구를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기후위기 시대 그린벨트는 최후의 보루다. 집값 폭등으로 고심하던 문재인 정부조차 해제에 신중했는데 윤 대통령은 거침 없다.

정부가 지난 8일 서울 그린벨트 해제 등이 담긴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개발제한구역 일대. 연합뉴스


정부는 “비정상적 집값 상승”과 “미래세대 주거 불안” 해소 차원에서 주택공급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합계출산율 0.7명 시대다. 정상적이라면 집이 남아 돌아야 하는데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면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다. 누가 집값 상승의 방아쇠를 당겼나. 수도권 키우기에 나선 정부 탓 아닌가.

하나씩 따져보자.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기다렸다는 듯 300조 원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민관이 추산한 직·간접 생산유발효과와 고용유발효과가 각각 700조 원과 160만 명이다.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한 용인 원삼면 클러스터까지 포함하면 200개 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용인에 터를 잡는다. 시가총액 1·2위 기업과 협력사 수 백개가 집적한다는 데 부동산이 꿈틀대지 않을 리 없다. 안 그래도 경기도는 인구 증가세가 가장 빠르다. 비수도권에서 유출되는 청년 절반의 목적지가 경기도라 해도 틀리지 않다. 국토의 11.8%인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선지 오래다.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전셋값이 2400만 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134조 원대 수도권 교통정책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현재 3개 노선으로 계획된 GTX(수도권 급행철도)를 6개로 늘려 경기·인천~서울 이동시간을 30분대로 단축하는 것이다. GTX 종착점을 충청과 강원까지 연장하는 내용도 담겼다. 수도권이 철도를 타고 팽창하면 자본과 인재 ‘쏠림’은 당연하다. 반면 국토부가 구색 맞추기용으로 내놓은 지방권 광역급행철도(x-TX)는 언제 착공할지 기약이 없다. 자치단체가 제안하면 민간자본을 유치해 추진하겠다는 청사진만 있다.

올해 1월 발표한 노후계획도시 재건축 규제 완화도 수도권 집값 상승의 트리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고금리 고통을 덜어주겠다며 보금자리론을 포함한 정책금융 상품을 대규모로 공급해 주택담보대출 폭증을 야기했다. 지난 4~6월 증가한 금융권 주택대출 중 60%가 정책금융상품이다. 올해 상반기 디딤돌 대출 집행액은 15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가 급증했다. 수도권에 초대형 투자가 예정된 상황에서 저리 대출이라는 휘발성 높은 ‘연료’까지 가세하자 주택 가격에 불이 붙은 것이다. 신축 빌라 공급·수요 위축을 야기한 전세 사기 역시 정부의 감독 부실 책임이 크다. 임대인의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세제혜택을 주기도 했다.

수도권 공급 확대로 집값이 하락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공사비 상승으로 분양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지금이 가장 싸다’고 매수에 나선 수요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어 공급한 보금자리주택은 분양가보다 5∼6배 뛰어 ‘로또 아파트’로 불렸다.

집값이 걱정이라면 ‘일극 정책’ 폐기가 우선이다. 일자리·인프라 증가→인구 집중→비수도권 소멸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할 텐가. 윤 대통령 역시 “진정한 지방시대를 여는 것이 저출생 극복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과밀화가 경쟁을 부추겨 결혼·출산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진단은 옳은데 처방이 엉터리다. 수도권에 공급하는 42만 가구에는 누가 살까.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청년이 상당수 차지할 것이다. 지역 소멸시계가 빨라지면 기업은 인재 구하기 어려운 비수도권 이전을 고려할 리 없다. 국가 지속가능성도 위태로워진다. 이미 부산은 소멸위기단계에 진입했다.


정부 여당이 약속한 산업은행법 개정(부산 이전)과 부산글로벌특별법 제정은 국회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진 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 야당을 설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야당 탓만 한다. 임기 2년 넘도록 공공기관 2차 이전 청사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 놓고 ‘수도권에 맞설 남부권 발전축’과 ‘연방제에 버금가는 분권’을 외친다. 늘 말 잔치뿐이다. 정부의 수많은 통계 중에서 지역 불균형이 완화됐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수도권 팽창으로 격차가 더 심화하면 윤 대통령은 정치 실종과 민생고뿐만 아니라 균형발전 실패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낸 부산·경남 유권자다. 그들이 “또 속았다”고 한탄하게 할 건가.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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