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카페인의 반수치사량은 대략 커피 100잔 정도 된다. 커피 100잔의 카페인을 한 번에 섭취한 사람 10명 중 5명은 카페인 과다 섭취로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럼 매일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 10명이 있을 때, 100일 후 이들 중 5명은 카페인 과다 섭취로 사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매일 커피 1000잔을 판매하는 커피전문점이 있다고 할 때, 고객 중 매일 5명은 카페인 과다 섭취로 사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연간 1인 평균 400여 잔의 커피를 마시는 우리나라에서 매일 28만여 명이 카페인 과다 섭취로 사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방사선 피폭의 인체 영향은 수많은 역학조사를 통해 많은 것이 알려졌다. 방사선 피폭의 반수치사량은 전신 피폭 기준 5000밀리시버트(mSv) 정도임이 밝혀졌다. 이보다 낮은 피폭 수준에서는 짧은 기간 사망에 이르지 않더라도 평생 암 발생률이 1000mSv당 5% 정도 증가했다. 예를 들어 평생 암 발생률이 38% 정도인 우리나라에서 한 번에 1000mSv를 피폭당한 사람은 암 발생률이 43% 정도로 높아진다. 100mSv 이하의 피폭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암 발생률이 오히려 약간 낮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낮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암 발생률을 낮추는 것인지 아니면 통계 오차에 의한 우연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100mSv 이하의 낮은 피폭 수준에 대해 호르메시스 모델, 역치 모델, 선형무역치 모델 등 다양한 가설이 등장하게 됐다. 호르메시스 모델은 낮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은 오히려 암 발생률을 낮춘다는 가설이다. 역치 모델은 낮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에서는 역치가 존재해 역치 이하에서는 암 발생 등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설이다. 선형무역치 모델은 아무리 낮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라도 효과는 피폭 선량에 비례하고 누적돼 암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가설이다. 커피 예와 같이 계산하는 방식이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방사선 방호의 목적으로 선형무역치 모델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ICRP가 선형무역치 모델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사선 피폭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모델로 평가해도 안전하도록 방호하면 실제로는 훨씬 더 안전하기에 예방 목적으로만 선형무역치 모델을 채택하는 것이다. ICRP는 실제 인명 피해 산정에는 선형무역치 모델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에 반대하는 일각에서는 선형무역치 모델이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시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거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수만 명의 사망자가 예상된다는 등의 소문은 선형무역치 모델과 무관치 않다.
그렇다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 방사선에 의한 실제 인명 피해는 어느 정도였을까? 유엔 방사선 영향 과학위원회(UNSCEAR)가 2008년 발표한 보고서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 인명 피해가 기술돼 있다. 응급 대처 요원 중 방사선 과다 피폭으로 134명이 피부 손상, 백내장 등의 급성질환을 겪었고 이들 중 28명이 방사선 과다 피폭으로 사망했다. 사고 후 방사능에 오염된 우유가 유통되는 바람에 사고 당시 아동, 청소년 중 6000명 이상이 갑상선 암에 걸렸고 이들 중 15명이 사망했다. 2013년 UNSCEAR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발전소 근무자와 주민 중 방사능 관련 죽거나 급성질환을 겪은 사람은 없고 앞으로도 방사선으로 건강상 영향을 받는 사례의 증가는 기대되지 않는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인한 실제 피해 규모는 일각의 주장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위 커피의 예와 같은 방식으로 피해를 산정했기 때문이다.
100mSv 이하의 피폭에서 어느 가설이 맞는지가 과학자들에게는 중요하지만, 일반인에게는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중요하고 분명한 과학적 사실은 100mSv 이하의 피폭에서는 어느 가설이 맞는지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그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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