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 중지’ 살인 혐의 입건…입법공백 속 논란 커져

김채운 기자 2024. 8. 1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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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입법 공백으로 임신중지에 살인죄가 적용된 것인데, 단체들은 조속한 입법과 함께 안전한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사산인지 낙태 후 살인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인데, 임신중지 수술 당시 태아가 산모와 분리된 채 생존해 있었다면 태아를 사람으로 보아 판례상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임신중지에 살인죄까지 등장하게 된 건 낙태죄 폐지 이후 '입법 공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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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단체 “더 음지로 갈까 우려”
서울 시내 한 경찰서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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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유튜버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며 올린 유튜브 영상이 사실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영상을 올린 유튜버와 수술을 진행한 병원 원장을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입법 공백으로 임신중지에 살인죄가 적용된 것인데, 단체들은 조속한 입법과 함께 안전한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영상이 촬영되고 임신중지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추가로 수사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12일 “유튜브 동영상, 쇼츠 영상 내용을 정밀 분석해 동영상을 올린 유튜버와 병원을 특정했다”며 “유튜버와 병원장 2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혐의는 살인이다.

경찰 수사 결과, 영상을 올린 유튜버는 지방에 사는 20대 여성으로 지인 소개를 통해 수도권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 여성은 지난 6월 말 유튜브에 임신중지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고,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2일 해당 여성과 병원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은 이날까지 유튜버 대면 조사를 두번 진행했다. 병원을 상대로는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압수수색을 벌여 진료기록부 등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수사의 핵심은 낙태냐 살인이냐를 확인하는 것이 될 것”이라며 “살인죄 증명이 되지 않으면 무죄”라고 밝혔다. 사산인지 낙태 후 살인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확인한다는 것인데, 임신중지 수술 당시 태아가 산모와 분리된 채 생존해 있었다면 태아를 사람으로 보아 판례상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다만 경찰은 “(살인 혐의 입증은) 상당히 어려운 수사로, 의료 감정까지 필요해 시일이 걸린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의료법 개정으로 전신마취 등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하는 병원은 수술실 내부에 의무적으로 폐회로티브이(CCTV)를 설치해야 하지만, 해당 병원엔 폐회로티브이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대한의사협회는 13일 열리는 상임이사회 의결을 통해 이 여성의 낙태 수술을 한 의사를 징계 심의에 회부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임신중지에 살인죄까지 등장하게 된 건 낙태죄 폐지 이후 ‘입법 공백’ 때문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모든 형법 조항(이른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12월31일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하라고 했지만, 국회나 정부가 입법에 나서지 않으며 현재 임신중지 자체를 처벌할 법은 없다.

여성·인권단체들은 애초 임신중지를 처벌의 관점으로 접근한 복지부의 수사 의뢰로부터 사태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최형숙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살인죄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이렇게까지 될 일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임신중지가 한층 더 음지에서 위험하게 이뤄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애초 36주에 이르러서야 임신중지가 이뤄진 위험한 상황을 짚는 게 먼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이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은 “왜 36주까지 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살펴야 한다”며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5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정부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낙태죄 비범죄화 이후 상담, 의료 보장, 교육 등을 통해 안전하게 임신중지나 출산을 택할 수 있는 대체 입법과 환경을 마련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단체들은 12일 해당 유튜브 영상과 경찰 수사 등에 대한 입장을 담은 성명을 내놓을 계획이다.

김채운 cwk@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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