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모두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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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동안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시차 적응이 채 안 된 상태로 수행할 첫 번째 일정은 고맙게도 아마추어 음악인 콩쿠르 심사였다.
아무래도 전공자들을 평가하는 것보다 부담이 덜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심사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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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동안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시차 적응이 채 안 된 상태로 수행할 첫 번째 일정은 고맙게도 아마추어 음악인 콩쿠르 심사였다. 아무래도 전공자들을 평가하는 것보다 부담이 덜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심사장을 향했다. 부문별 한두 명씩 총 일곱 명의 심사위원이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참가자 개개인에게 메모를 남겨 줄 작은 평가지와 점수표를 받고 설명을 듣자니 각 분야의 선생님들이 짧게 1대1 코멘트를 해주는 방식이었다.
Youth, teenager, adult, senior. 학년별이 아닌 생애주기로 나눈 카테고리가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참가자는 남자 대학생이었다. 진지한 태도로 인사를 하고 바르톡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는데 웬걸, 엄청난 리듬감과 표현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몰입도와 집중력이 대단했다. 다음 연주할 사람들 기죽어서 어쩌나, 하는 동안 다음 참가자가 나오는데 이번 참가자는 연주복을 빼입고 보우타이까지 맸다. 아주 공손한 인사 후에 피아노에 다가가 연주하는데 이 참가자는 카푸스틴을! 그 어려운 곡을 신나게 연주한다. 다른 참가자들도 예상보다 훨씬 수준급의 연주자들이었다. 네 번째 순서쯤엔 내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부담 없이 가볍게 들으러 온 자리였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인사가 하나같이 참 인상적이었다. 작은 무대라 몇 걸음 되지 않는 등장과 인사, 그리고 퇴장하는 걸음걸음이 정말 소중해 보였다.
전공자들의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은 입·퇴장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단 몇 초라도 연주를 더 들려주기 위해 재빠른 걸음으로, 인사는 생략하고 연주를 시작하기에 바빴는데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음악과 연주, 무대를 이렇게 소중하게 다뤄주는 이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성악 참가자들의 노래를 들었다.
'O mio babbino caro', 오페라 잔니스키키의 유명한 아리아를 부르는 참가자는 이미 오페라에 프리마돈나로 서 있는 듯했다. 진정성 있는 태도가 분명 그들의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성악 부문 참가자 중엔 아까 피아노 부문에서 연주한 사람도 있었다. 비전공자로 두 개 부문에 도전하다니… 온 몸을 덜덜 떨면서도 끝까지 깊은 호흡을 조절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참 아름다웠다. 관현악 순서가 되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참가자들이 연주했다. 아직 암보를 못 해 악보를 보면서도 한 음 한 음 성의를 다해 연주했다. 1대1 코멘트를 듣던 한 참가자는 활 잡는 자세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끼리 이들이 분명 대부분 과거에 예중 예고를 다녔던 적이 있었을 거다, 얘기했지만 알고 보니 음악 전공을 한 이력이 있으면 출전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생활 음악인들인 거구나.
살면서 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 음악은 아니었으리라, 본업에 종사하고 학생의 경우 자기 전공을 공부하며 틈틈이 음악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 헤맸으리라. 전문가라고 믿는 심사위원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 진지함, 연습실도 아닌 콩쿨장이라는 낯선 환경, 그 어색하고 불편한 조건들을 감수하고도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무대에 올랐을 이분들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과 감동을 받은 하루였다.
심사를 마치고 서초동에서 각자의 갈 길로 가며 심사위원들이 인사를 나누었다. 피아노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선생님들, 오늘 정말 감동이었고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 지금 연습하러 가야겠어요" 김예지 목원대 관현악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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