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들도 우려한 이승만 미화 영화… KBS, 광복절 방송 이유는

박지은 기자 2024. 8. 1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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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복절에 이승만 전 대통령 일대기 다룬 영화 '기적의 시작' 방영 결정
언론노조 KBS본부 및 시민사회 단체 '이승만 찬양 다큐 방영 철회 촉구 기자회견'
"KBS만의 문제 아냐... 윤 정부 삐뚤어진 역사관으로 대한민국 정신적 뿌리 바꿔치려해"

KBS가 광복절 당일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편향적 역사관을 담은 것으로 논란이 된 영화 ‘기적의 시작’을 방영하기로 해 내부 구성원을 비롯해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해당 영화가 공영방송에서 방영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우려 속에 방영 제고를 수차례 요청한 팀장 등 실무진이 담당 업무를 거부하자, 편성국장이 직접 영화 방송권 구매 결제문서를 작성하고 김동윤 편성본부장이 종합편집 제작을 지휘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KBS누리동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KBS본부는 사월혁명회, 제주4·3범국민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 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KBS 광복절 특선 이승만 찬양다큐 '기적의 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KBS본부 편성구역 중앙위원인 김문식 PD가 기자회견에서 해당 영화 내용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박지은 기자

1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사월혁명회, 제주4·3범국민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 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기적의 시작’에 대해 “역사적 왜곡으로 점철됐고, 극우세력의 입장만을 담은 정치적 선전물”이라며 KBS가 방영해선 안 되는 이유를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이들 단체는 박민 KBS 사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사측의 ‘기적의 시작’ 방영 지시는 지난 1월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일반적인 절차대로라면 영화 등 외부 제작 프로그램을 방영하게 될 경우 전문성을 가진 구매 담당자가 해외 유수 영화제의 수상작, 대중성이 높은 영화 등에 대해 판단을 내려 구매를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임원진에서 ‘건국 전쟁’과 ‘기적의 시작’을 콕 집어 3·1절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영을 추진하라는 업무 지시가 내려왔다. 2월 해당 부서 실무진은 두 작품 모두 극단적인 시각을 담고 있고 이승만에 대한 미화라는 점에서 방영이 부적절하다는 검토 결과를 보고했으나, 3월 또다시 해당 영화들을 현충일, 광복절 특집 프로그램 후보로 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왔다. 이후 ‘건국 전쟁’이 TV조선과 계약을 했다는 내용을 보고하자, 임원들은 본격적으로 ‘기적의 시작’에 초점을 맞춰 계약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 4월부터 7월까지 실무진은 △인터뷰이들이 극우 인사로 편중된 점 △인간 이승만과 기독교가 지나치게 미화된 점 △제주 4·3, 3·15 부정선거, 4·19혁명 등에 대한 시각이 일방적인 점 △관객수에 비해 지나치게 구매 가격이 높은 점 등 ‘기적의 시작’이 방영될 경우 여러가지 우려되는 문제점에 대해서 수 차례 보고를 했다. 하지만 간부들이 직접 방송권 구매와 제작을 강행하면서 끝내 사측은 영화 방영을 결정했다.

12일 서울 여의도 KBS누리동 언론노조 KBS본부 사무실에서 KBS본부는 사월혁명회, 제주4·3범국민위원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 기념단체 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KBS 광복절 특선 이승만 찬양다큐 '기적의 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지은 기자

박상현 본부장은 “방영을 지시한 간부들도 ‘기적의 시작’ 방영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압력으로 인해 방영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간부들조차 꺼려했지만 사측이 논란의 영화를, 그것도 광복절 당일 방영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KBS본부 편성구역 중앙위원인 김문식 PD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간부는 실무진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적의 시작’을 방영하는 것에 대해 본인도 우려가 상당히 크다. 그래서 몇 차례 의견을 윗선에게 전달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렇지만 편성 책임자인 편성본부장이 다 책임진다고 하니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80여분 정도의 러닝타임인 영화를 4분가량 편집했다고 한다. 편성본부 간부들도 이 영상물이 그대로 방영되기엔 매우 부족하고 부적절하다는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며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문제는 많지만 어쩔 수 없는 어디선가의 압력, 눈치보기 등으로 인해 덕지덕지 편집을 해가면서 '일단 우리는 틀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기적의 시작' 영상 일부분 /언론노조 KBS본부 제공

앞서 KBS 편성본부는 ‘기적의 시작’ 방송 결정에 대해 “편성본부에서는 독립적인 편성권에 의해 방송 편성을 결정했고, 광복절을 맞아 다양성 측면에서 해당 다큐 영화를 선정, 방송하게 됐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종찬 광복회장께서 대통령실에 밀정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문제적 인물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할 수 있느냐고 얘기를 하셨는데 독립기념관에서 벌어지는 일, 지금 KBS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저 우연의 일치겠냐”며 “이 모든 일의 뿌리, 방향은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박민 사장, 용산 대통령실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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