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꼰대문화’ 고질병… 과감히 메스 대라 [심층기획-돌아보는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금 안세영 작심발언 후폭풍
문체부, 협회 운영 실태 등 전반 조사
유인촌 “지금이 체육 정책 개혁 적기”
배드민턴協, 평가위원 점수 30% 반영
위원 주관 따라 대표팀 당락 결정 구조
‘지도자 지시에 복종’ 운영 지침도 논란
신인선수 계약금·연봉상한제 개선 추진
문체부, 체육국장 단장으로 조사단 구성
9월 중 체육 정책 전반 조사결과 발표
구체적으로 △국가대표 선발 과정의 공정성 및 훈련과 대회출전 지원의 효율성 △협회의 후원 계약 방식이 ‘협회와 선수 사이에서 균형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 △배드민턴 종목에 있는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제도의 합리성 △선수의 연봉체계에 불합리한 점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지금이 체육 정책을 개혁할 적기”라면서 “배드민턴협회 하나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체육 정책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이 조사단장을 맡게 될 조사단은 문체부 직원과 스포츠 윤리센터 조사관 등 10명 이상으로 꾸려져 9월 중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가 나서자 배드민턴협회 산하 실업배드민턴연맹은 문제로 지적된 신인선수 계약금·연봉상한제를 완화하고 예외 규정 신설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규정은 신인선수 계약 기간의 경우 대졸 선수는 5년, 고졸 선수는 7년으로 하고 계약금은 1억5000만원과 1억원을 넘길 수 없도록 돼 있다. 또한 입단 첫해 연봉은 대졸 6000만원, 고졸 선수 5000만원이 상한액이다. 이후 3년 차까지 연간 7 이상 올릴 수 없다.
물론 안세영의 발언은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협회가 특정 선수를 위해 운영되길 바라는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28년 전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은 “누가 대표팀 하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고 했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안세영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표현 방식이 서투르고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얼핏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는 Z세대를 권위로 무시하며 불통 행정을 일삼는 ‘꼰대 감성’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안세영의 저격으로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됐던 배드민턴협회의 민낯이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협회는 213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 등 대한체육회 60여개 가맹단체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후원계약 등 자체 수입은 93억원으로 재정자립도는 46.7%에 불과하다. 40명에 가까운 임원을 두고 있으면서도 기부금 수입이 없는 점도 눈에 띈다. 대한자전거협회 등 올림픽 종목조차 아닌 단체 기부금이 1억원대에 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배드민턴협회의 곳간이 비어있기 때문에 후원사의 입김은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은 개인 후원이 아닌 협회를 지원하는 업체의 용품 사용이 강제될 수밖에 없다. 안세영은 “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만으로 보상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풀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낸 것도 이 탓이다.
취재진에 둘러싸인 안세영 안세영이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취재진에게 대한배드민턴협회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천공항=이제원 선임기자 |
대한체육회와 배드민턴협회는 해결 의지를 내비쳤지만, 이마저도 ‘어른’들의 진심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이 체육회장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정리할 계획”이라고 했고,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도 “갈등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안세영 측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협회도 체육회도 안세영에게 별다른 연락이 없다. 금메달을 축하한다는 말도 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배드민턴협회는 선수 선발의 공정성도 양궁협회와 대비된다. 협회는 경기결과 70%와 평가위원점수 30%를 반영해 대표 선수를 선발한다. ‘복식 등에서 파트너십(60%)과 경기태도(40%)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평가위원의 주관에 따라 대표팀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구조다. 안세영이 “배드민턴에서 왜 금메달이 1개밖에 나오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안세영 문제 외에도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메달이 양궁, 사격, 펜싱, 태권도 등 특정 종목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별로 강한 종목이 있기 마련이지만 좀더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이 나와야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이번 대회 수영과 근대 5종 등의 종목에서 나온 동메달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장한서·정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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