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단을 뚫고 나오는 압도적 성량에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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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성악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오르길 바라는 '꿈의 무대'다.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선 단역 자리 하나도 쉽사리 내주지 않는 콧대 높은 오페라 명가(名家)지만,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지 2~3년 만에 두 극장에서 모두 주역 자리를 꿰차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인 성악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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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급 테너 백석종 협연
토스카·투란도트 아리아 불러
깔끔한 고음과 깊은 음색 압권
단 에팅거 '세헤라자데' 이끌어
SAC 오케스트라 집중력 발휘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성악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오르길 바라는 ‘꿈의 무대’다. 철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선 단역 자리 하나도 쉽사리 내주지 않는 콧대 높은 오페라 명가(名家)지만,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지 2~3년 만에 두 극장에서 모두 주역 자리를 꿰차 세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인 성악가가 있다. “그의 밝은 테너 음색은 어두운 오케스트라의 울림까지 뚫고 나갔다”(가디언) 등 외신의 극찬이 쏟아지는 세계 정상급 테너 백석종(38) 얘기다.
그가 지난 11일 한국을 찾았다. 나폴리 산카를로 극장과 이스라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단 에팅거, 해외 유수 악단에서 활동 중인 연주자들이 주축이 된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2024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폐막 공연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백석종이 들려준 첫 곡은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1막에서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가 포로가 된 적국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내보이는 아리아. 그는 시작부터 발군의 기량을 보여줬다. 명확한 발음과 호소력 강한 음색, 소리의 중심이 단단히 잡힌 발성, 깔끔한 고음 처리로 단숨에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을 만큼 밀도 높은 소리로 장군으로서의 용맹함을 드러내다가도 돌연 몸에 있는 힘을 모두 빼고 따뜻한 음색으로 순수한 서정을 읊는 가창에서 그가 얼마나 음악적 표현 폭이 넓은 테너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 곡은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1막에서 화가 카바라도시가 한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연인 토스카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아리아 ‘오묘한 조화’. 백석종은 작품의 역동적 변화를 정교하게 짚어냈다. 특히 저음역에서 고음역으로 연결할 때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소리를 직선으로 뻗어내면서 푸치니 본연의 선율적 아름다움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은 일품이었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3막에 등장하는 유명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네순 도르마)에선 섬세하게 조형하는 셈여림의 변화, 오케스트라를 가볍게 뚫고 나오는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감정적 증폭이 일어나는 순간, 단순히 물리적인 힘으로 소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 소절 한 소절 아주 얇은 종이를 쌓아 올리듯 서서히 울림과 음색의 깊이를 더하면서 쏟아내는 장대한 에너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환호를 불러내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악단은 유연한 악상 변화로 내내 백석종을 훌륭히 보좌했다. 악단의 메인 프로그램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에서도 집중력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됐다. 설화집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를 소재로 작곡된 이 교향시는 금관을 중심으로 엄청난 무게감, 위엄을 뿜어내는 술탄의 주제와 바이올린 솔로가 만들어내는 처연하면서 동양적인 색채의 세헤라자데 주제가 대조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나가는 게 핵심인데, 에팅거는 긴 호흡으로 시종일관 악구의 흐름을 긴밀히 조율하면서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였다.
작품 속 중요한 변화가 생겨나는 순간을 정확히 짚어내는 에팅거의 지휘, 계속되는 주제의 반복·변형에도 각 선율의 성격을 명료하게 표현하면서 생동감을 불러낸 악장과 수석들의 노련한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프로젝트 악단인 만큼 악기군별로 소리가 응축되는 힘이 다소 약하고, 이 때문에 피날레의 순간 대비 효과가 덜했다는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는 안정감 있는 연주였다.
세계 곳곳, 각기 다른 위치에서 음악을 향하는 사람이 한데 모여 만드는 ‘축제의 장’. 올해 그 마지막 페이지로 손색없는 무대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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