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균 칼럼] 청년의 분노는 정당하다

정상균 2024. 8. 1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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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의 최고 선물
Z세대의 용기·성장 확인
위선·불공정에 분노해야
정상균 논설위원
유독 무더운 여름, 2024 파리올림픽은 감동이자 선물이었다. 17일간의 열전, 우리나라는 32개의 메달을 땄다. 역대 최소급 144명 선수단이 이뤄낸 값진 쾌거다. 메달 색깔은 땀의 가치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결과는 결과일 뿐, 최선을 다한 과정 자체가 성취다. 1020세대, 일명 '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 선수들이 보여준 패기, 성장에 감탄했다. "나를 이긴 상대는 더 오래 노력한 선수"라며 패배에도 쿨했다. "세계 랭킹은 숫자일 뿐" 겁 없는 그들이 던진 메시지는 신선했다. 톡톡 튀었다. 요즘 말로 '킹 받는' 청년들의 기성세대를 향한 "이건 아니지"라는 외침 같았다. 1020세대는 우리 인구의 21%에 불과하다.

이들의 반란은 충격이었다. 배드민턴 금메달을 딴 안세영은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했다. 의례적인 수상소감을 뛰어넘은 당찬 발언에 사회가 떠들썩하기까지 하다. 안세영은 "훈련방식이 몇 년 전과 똑같다" "양궁처럼 어느 선수나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딸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수 육성과 훈련방식에 대한 공정과 혁신 요구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불통과 일방적 의사결정도 비판했다. 안세영은 "문제를 회피하고 미루기보다 어른들이 고민하고 책임져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안세영의 뼈 때리는 발언에 협회와 체육회는 뒤처리에 우왕좌왕했다. 물론 선수를 지원해온 코칭·육성 시스템이 없었다면 지금의 영광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선수가 최고의 순간에 토해낸 진의를 기성세대 시각에서 왜곡해선 안 된다. 안세영은 끝까지 라켓을 놓지 않고 훈련했다. 인내했다. 당당하게 선 최강자 자리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청년의 분노는 정당했다.

결과 지향의 올림픽은 쇼와 다름없다. 선수들의 각본 없는 반전과 언더독의 기적, 그것이 진정 스포츠다.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으면 정당하지 않다. 메달은 영광일 뿐 기득권이 아니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에서 확인된 공정과 투명,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청년정신이다.

메달 색깔로 경중을 가리고 평가하는 결과 지상주의는 초경쟁 사회의 산물이다. 양궁 3관왕 김우진은 "메달 땄다고 젖어있지 마라. 해 뜨면 마른다"고 일침했다. 그도 2025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 같은 선에서 다시 겨뤄야 한다. 안세영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에 오른 뒤 쇄도하는 인터뷰를 사양하며 "메달 하나로 연예인이 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엘리트 특권은 없어야 한다. "메달을 따지 못해 잊혀질까" 하는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지난한 훈련, 정직하게 흘린 그 땀의 가치를 타인이 쉽게 평가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엘리트 청년이 의대생과 전공의다. 그들은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가운을 벗고 사라졌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보수, 잘못된 의료체계를 지적하는 그들의 분노는 옳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과 환자를 등졌다. 우월 특권의식에 젖은 기득권층과 다르지 않다. 분노가 옳아도 방법이 잘못됐다.

2030 청년은 분노하지 않는 세대다. 불확실한 미래, 각자의 살길을 찾아 경쟁하는 것도 벅차다. 소비하고 즐기며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들로 인식된다. 편견이다. 그들은 분노하고 공정, 투명을 요구하는 의지가 강하다. 파리올림픽 청년들이 보여줬다.

분노하지 않는 청년세대가 더 위험하다. 기성세대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청년을 담보로 한 나랏빚을 제 돈처럼 뿌리겠다는 정치인, 자식을 편법과 부정으로 채용해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직자와 같은 위선자들, 순혈주의에 갇혀 타 병원 제자를 가르치지 않겠다는 일부 의대 교수들, 납세·부양 부담을 청년들에게 떠넘기는 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전문가들, 이념·기득권, 편가르기로 국정을 농단하는 입법권자들이 청년을 두려워해야 한다.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의 조건이란 없다. 그건 조건이 아니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하는 것, 그것이 용기다. 안세영의 용기가 대단하다.

skjung@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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