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 만큼 받는’ 신연금? 미래세대 부담만 늘어 [왜냐면]

한겨레 2024. 8. 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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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제대로 톺아보기 ⑥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민원실 모습. 연합뉴스

홍원표 |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지난 4월 시민들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는 숙의와 토론을 거쳐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각각 50%, 13%로 올리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혁을 선택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은 시민들의 선택을 구조개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부·여당은 아직 구체적인 연금 구조개혁안을 제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22대 국회 출범 이후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금개혁 경과 보고서를 보면, 구조개혁의 핵심 방향으로 기초연금 대상 축소 및 급여 수준 강화,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활성화와 더불어 국민연금의 확정기여형 전환이 포함되어 있다.

통상 ‘낸 만큼 받는다’고 하는 확정기여형은 납입한 보험료를 적립·운영하여 원금과 운영수익만큼 급여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주로 저축연금 같은 민간보험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며, 운영 수익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에 연금 재정이 부족해질 일이 없다. 즉 기금 고갈 위험이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공포 조장이 너무 심각했던 탓에 기금 고갈 위험이 제로라는 말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금 고갈이 없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공적연금의 핵심은 기금이 아니라 보장성에 있다. 소득 활동이 더 이상 어려운 노후에도 국민이 적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공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수급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연금을 받게 되는 60년 뒤에도 노인빈곤율은 25~30%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공적연금의 보장성이 낮기 때문이다.

‘낸 만큼 받는’ 신연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낸 만큼 받는’ 원리 덕분에 젊은 시절 가난했던 사람들은 노후에도 가난할 확률이 더 커진다. 신연금 도입을 주장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자는 ‘연령별’로 기금을 운영하면 조기 사망한 사람의 적립금이 동일 연령군 생존자에게 돌아가 재분배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통상 기대수명과 부가 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개발연구원이 주장하는 재분배는 부자들에게 유리한 역진적 분배다. 역진적 분배를 소득 재분배 효과라고 주장하는 과감함이 그저 신박할 따름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세대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이다. 특정 연령부터 신연금에 가입하게 되면 국민연금 가입은 중단된다. 가입 중단은 보험료 수입 중단을 의미한다. 보험료 수입이 중단되면 기존 가입자 급여 지급을 위해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 이를 전환비용이라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추계한 전환 비용은 현시점에서 609조원이다. 국민연금 평균 기금운용 수익률 5.9%를 적용하면 매해 35조원에 달하는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돈이다. 현실적으로 일시불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나눠서 지원해야 하는데, 이 경우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복지부가 김진표 전 국회의장에게 보고한 추계 재정 소요액은 1700조원이다. 모두 미래세대 부담이다. 단 보험료가 아닌 조세로 납부할 뿐이다.

대다수의 국가들이 공적연금에 국고를 지원한다. 전 국민의 노후가 걸린 문제니 국민들 보험료 외에도 국가가 재정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추계한 바를 보면,국내총생산(GDP) 1%의 국고 지원과 보험료율 12%, 기금운용 수익률을 1.5%포인트 올리면 70년 뒤까지 국민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총생산 1%의 국고 지원이면 약 22조원으로 한국개발연구원이 추계한 신연금 전환 비용의 매해 이자 수익(35조원)보다 적은 돈이다. 신연금 전환보다는 현 국민연금 유지 강화가 훨씬 쉬운 길이고 맞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우려하는 바는 연금 민영화 가능성이다. 확정기여형 전환은 완전적립식, 개인적립계좌 등과 함께 1980~90년대 연금 민영화를 주도했던 세계은행의 연금 민영화 핵심 정책 수단이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을 우선 추진한 바 있다. 뿐만아니라 각종 공공분야에서도 부분 민영화, 우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해 왔다. 구조개혁을 안 하면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확인한 국민의 뜻까지 다 무마시키겠다는 몽니가 연금 민영화의 의지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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