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첨병' 팹리스… 韓비중 고작 1.5% [진정한 반도체 강국의 조건 (상)]

파이낸셜뉴스 2024. 8. 1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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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팹리스 시장 작년 2186억弗
美 57%·대만 21%·中 17% 차지
국내업체, 대기업 특화 제품 생산
글로벌 경쟁력 떨어져 성장 정체
시스템반도체 '첨병' 팹리스… 韓비중 고작 1.5%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호황이 도래하면서 우리나라가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메모리반도체보다 2배 이상 큰 시장을 가진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부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팹리스 업체 상당수가 여전히 영세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12일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시장은 전년 2060억달러보다 6% 늘어난 2186억달러였다. 올해는 1·4분기부터 전년 동기 456억달러보다 무려 43% 늘어난 655억달러를 기록하며 연간으로 두자릿수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팹리스는 반도체 연구개발(R&D)만 전문으로 하고 생산은 철저히 외주에 맡기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한다. 전 세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미국 엔비디아, 무선통신 반도체 부동의 1위 미국 퀄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만든 반도체 제품을 대만 TSMC와 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 중국 SMIC 등 파운드리 업체들이 받아 생산을 담당하는 분업구조다.

김경수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넥스트칩 대표)은 "반도체 개발에서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하는 종합반도체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반도체 트렌드를 쫓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런 이유로 반도체를 발 빠르게 개발한 뒤 파운드리 등 외주에 맡기는 팹리스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팹리스 업체들이 일부 분야에서 선전한다. 텔레칩스는 자동차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만들어 현대차·기아 등에 활발히 공급한다. 동운아나텍은 스마트폰에서 자동초점, 손떨림 방지 등 기능을 하는 드라이브IC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 또한 LX세미콘은 디스플레이 구동칩, 픽셀플러스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다.

하지만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56.8%, 대만 20.7%, 중국 16.7% 등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하는 국가들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치다.

특히 미국 기업은 전 세계 팹리스 상위 10위 안에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AMD △마벨 △옴니비전 등 6곳이 이름을 올렸다. 대만 업체 역시 △미디어텍 △노바텍 △리얼텍 등 3곳이 있다. 중국 최대 팹리스 업체 쯔광잔루이가 처음으로 10위에 오르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팹리스 업체들이 지난해 벌어들인 총매출을 4조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이는 팹리스 업계 1위 엔비디아가 같은 기간 기록한 매출액 609억달러(약 83조원)와 비교해 5%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하고, 영세한 우리나라 팹리스 업체 상당수가 도태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을 지낸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는 "반도체 회로선폭이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으로 미세화하는 추세에 따라 반도체 하나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금이 과거와 비교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며 "대부분 영세한 우리나라 팹리스 업체들 입장에선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다가도 자금력이 부족해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팹리스 업체 대표는 "그동안 팹리스 업체들은 삼성과 LG,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에 특화된 제품 위주로 만들다 보니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고, 여기에 대기업들이 마진을 높게 주지 않기 때문에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여력도 부족했다"며 "결국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성장할 수 있는데 이미 미국과 대만, 중국 등 경쟁자들이 장악한 상황이라 이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butter@fnnews.com 강경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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