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서울대의 ‘마르크스 경제학’ 폐강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스스로 모순에 의해 쓰러질 것이라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으로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 마르크스가 떠받들던 노동자들의 혁명성과 계급성도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하에서 이뤄진 생산력 발전 덕분에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당·선거제도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여전히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키운다. 땡볕에서 일하는 농민과 새벽 버스에 몸 싣는 노동자, 모두 열심히 일하지만 평생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부자는 매일 골프를 쳐도 통장에 다달이 이자가 쌓인다. 이런 자본주의 해악을 구조적으로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전쟁과 제국주의, 다국적 기업의 독과점과 갑질, 기후 위기에도 멈추지 않는 환경 오염, 여성·청년 착취 등도 마르크시즘은 간명하게 설명한다. 19세기 유럽에서 활약한 마르크스는 2024년 한국의 쿠팡이나 티메프 같은 정보통신기업 존재를 상상조차 못했지만, 이들 기업에서 일어난 노동 착취나 그림자 금융 폐해를 <자본론> 등 저작물을 통해 너무나도 정확히 예견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위기 때마다 소환되는 사상이 마르크시즘이다. 1920년대 대공황은 물론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마르크스 경제학이 ‘역주행’한 것은 자본주의 문제점과 대안을 이보다 잘 분석한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올 2학기에 ‘정치경제학 입문’ ‘마르크스 경제학’등을 개설하지 않기로 했다. 경제학부 교과위원회는 “교과과정 운영과 강의 수요·공급 상황을 고려해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 교수와 학생들에게 실망이 크다. 수요 미달로 문 닫는 강의가 한둘이겠는가만 수요·공급 시장 논리의 한계를 설명하는 마르크스 경제학마저 이런 식으로 내친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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