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된 물류창고…달려든 외국계 투자자
부지 매입해 직접 개발에 나서기도
과공급 해소에 중국 이커머스 등 수요 증가 전망
'천덕꾸러기'였던 수도권 물류센터가 외국계 기관 투자자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공급 과잉으로 저평가된 국내 물류센터들을 발 빠르게 매집하려고 하는 것이다.
12일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기업 CBRE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오피스 빌딩, 상업시설, 호텔, 물류센터 등 국내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된 해외 자본은 총 23억달러(약 3조1550억원)에 달했다. 직전 해와 비교하면 31.5%나 급증했다. 최근 3년(2020~2022년) 유입된 해외 자본이 연평균 19억달러였던 것과 비교해도 20% 이상 불어난 것이다.
특히 지난해 국내 상업 부동산에 대한 해외 투자액 중 물류센터에 대한 투자는 전체 투자금의 70% 수준인 16억달러(약 2조1950억원)에 이른다.
최근 외국계 투자자들이 수도권에 위치한 매물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어서다. 지난해 캐나다 대체투자운용사 브룩필드자산운용은 국내 최대 규모인 연면적 43만㎡의 인천 청라 물류센터를 6590억원에 사들였다. 쿠팡이 해당 물류센터의 80%를 임차한다.
미국계 부동산 투자사 AEW캐피털도 국내 페블스톤자산운용과 함께 인천 서구 복합물류센터 로지스허브를 3100억원에 인수했고 경기 여주시 가남 물류센터도 2840억원에 매입했다. 미국 투자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YNP자산운용이 경기 오산 로지폴리스 물류센터(연면적 15만㎡)를 매입하는 데 투자금을 댔다.
싱가포르계 부동산리츠 메이플트리도 경기 이천 물류센터를 1500억원에 인수했고, 다른 싱가포르 부동산 투자사 캐피탈랜드는 경기 안성 성은 물류센터를 1100억원에 사들였다. 미국계 대체투자운용사 안젤로고든도 지난해 베스타스자산운용과 함께 충북 음성군 DCL 중부 물류센터를 820억원에 인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22년 호주계 물류 부동산 투자회사 로고스프로퍼티는 로고스 시흥 물류센터를 약 2600억원에 선매입했다. 켄달스퀘어 일산 DC센터도 미국 교직원연금기금(TIAA) 산하의 투자 운용사인 누빈자산운용이 '셰어딜(펀드 수익자 교체)' 형태로 인수했다.
이같은 흐름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말 인천 남청라물류센터가 디앤디인베스트먼트가 설정한 '디디아이남청라로지스틱스' 리츠에 매각됐다. 매매가는 1170억원 수준이다. 이 리츠의 주요 투자자로 미국계 보험사 산하의 부동산운용사 벤탈그린오크가 이름을 올렸다. 벤탈그린오크는 부산신항 등에도 물류센터 투자를 검토하는 등 국내 물류센터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에는 미국계 부동산기업 존스랑라살(JLL)의 자회사 라살자산운용이 경기도 안성 대덕물류센터 A·B동을 지산산업으로부터 약 6000억원에 매입했다. 2023년 준공한 연면적 18만7200㎡ 규모의 A동에 이어 연면적 19만8700㎡ 크기의 B동도 올해 준공을 마쳤다. 준공되기 전에 자산을 사들이는 '선매입'이었다.
직접 개발에 나선 외국계 투자자도 있다. 싱가포르 개발업체 이퀄베이스는 올해 5월 계열 투자사 노스모드를 통해 경기 이천 백사면 부지 3만1800㎡를 매입했다. 총 연면적 약 4만1800㎡의 물류센터로 계획된 부지 개발에는 총 790억원의 투자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계획대로라면 이 물류센터는 2026년 1분기에 완공된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워버그핀커스는 국내 물류센터 개발사인 엠큐그룹과 합작법인(JV) '큐브인더스트리얼'을 설립하고 운용사 크레스트아시아자산운용을 인수했다. 이들은 워버그핀커스의 자본력과 엠큐그룹의 물류센터 개발 전문성을 합쳐 물류센터 개발·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이밖에도 현재 세계 최대 PEF 운용사 중 하나인 블랙스톤도 국내 물류센터 투자를 검토하고 있으며, 국내에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자국 이커머스 사업을 위해 중국 자본도 국내 물류센터 투자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물류센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급성장했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남과 동시에 이커머스 수요 정체, 기준금리 인상, 물류센터 공급 과잉, 토지 가격 상승 등으로 공실이 늘고 임대료가 꺾이며 하향세를 탔다.
작년 하반기 수도권 물류센터 공실률은 10.3%로, 지난 2022년 같은 기간 3%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났다. 투자 수익률도 급감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로 인허가를 마친 사업지들마저 착공이 지연되고, 시행사들의 자금난으로 물류센터를 떠안은 시공사들에 의해 공매에 부쳐지는 물건도 늘어갔다.
영국 부동산 서비스기업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020년까지는 인허가를 받은 대부분의 물류센터 개발사업지가 착공됐으나 2021년에는 74%, 2022년에는 27%만이 착공에 성공했고 작년에는 이 비율이 4%까지 떨어졌다.
매매가격도 조정이 됐다. 지난 2021년 수도권 물류센터의 평(3.3㎡)당 평균 매매가는 700만원대였던 것에 비해 최근 거래된 인천 청라 물류센터 등의 평당 가격은 500만원대 수준으로 내려갔다.
부동산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이 물류센터 투자를 기피하는 중에 가격이 조정된 수도권 신축 상온 물류센터는 외국계 투자자들에겐 서로 매입하기 위해 경쟁하는 우량 자산이 됐다. 현재 물류센터로 개발이 가능한 토지가 이제 수도권에 거의 남지 않았다 "면서 "특히 내년부터는 공급 제한의 효과가 나타나는 한편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의 진출로 창고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단기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김열매 코람코자산운용 R&S실장은 "인허가 물량이 2022년 상반기 이후 꾸준히 감소해 내년부터 공급물량은 평년 수준으로 감소하며 과잉 공급물량은 점진적으로 해소될 예정이지만, 누적된 미착공 물건들이 착공 전환하면서 공급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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