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서도 더 싼 제품만 찾아"… 장사 되는건 '떨이상품'뿐

박홍주 기자(hongju@mk.co.kr), 박동민 기자(pdm2000@mk.co.kr), 서대현 기자(sdh@mk.co.kr) 2024. 8. 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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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위축·불황형 소비 확산
외식 줄이고 가성비 중시
저렴한 돼지고기 수입 급증
2분기 소매판매 2.9% 감소
9분기 연속 침체 늪에 빠져
부산 마트·백화점 줄폐업
패션은 중고명품·SPA 인기

◆ 내수불황 그림자 ◆

12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의류 매장이 방문객이 줄어 한산한 모습이다. 백화점 매출을 견인하던 고급 의류 브랜드들은 소비자 발걸음이 줄어들면서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호영 기자

"장사가 이렇게 안되기는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아요. 매출이 작년에 비해 거의 반 토막이 났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네요."

서울 명동에서 이탈리안 식당을 운영하는 임 모씨(38)는 "이달이 최악이겠거니 하면 다음달에 매출이 더 떨어지는 식이라 직원도 3명이나 내보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불경기에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전국 곳곳의 소매업이 휘청이고 있다. 반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초저가 상품이나 중고 명품은 거래가 늘어나는 등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소매판매는 전국 17개 시도 중 충남과 충북을 제외한 15개 시도에서 일제히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 승용차·연료소매점, 전문소매점에서 감소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됐다.

최대 도시 서울도 소매판매가 -6.8%를 기록해 울산(-7.9%), 인천(-7.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감소세를 보였다. 서울에선 강남이나 성수를 비롯한 일부 핵심 상권을 제외하면 대다수 지역 상권 매출이 정체되거나 줄어들면서 폐점 사례가 늘고 있다.

부산도 전년 동기 대비 -2.7%를 기록해 전 분기에 이어 소매판매 감소세를 이어갔다. 부산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무려 6곳의 대형 유통업체가 폐점을 결정했다.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에 있던 NC백화점은 문을 연 지 9년 만인 올해 5월에 폐점했다. 그나마 2030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 있던 대형 상업시설이 문을 닫자 소비 침체가 매우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현정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억눌려 있던 외식 욕구가 2022년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해 한식당, 외국식당, 구내식당, 주점, 비알코올 음료 등 모든 부문에서 매출이 늘어났다가 지난해부터 줄어드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국 기준 소매판매도 전년 동기 대비 2.9% 줄어 2009년 1분기(-4.5%)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소매판매가 가장 저조한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소매판매는 역대 최장인 9분기 연속 감소세에 있다. 고금리·고물가가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내수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반면 값싼 식재료나 중고 명품 쇼핑 등 이른바 '불황형 소비'는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농축산물 수출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돼지고기 수입량은 32만6000t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돼지고기 수입액은 11억9000만달러로 13.3% 늘었다.

4년 전인 2020년(7억4000만달러)과 비교하면 60% 넘게 뛰었다.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해 주머니 사정이 악화하면서 소고기나 국내산 돼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싼 수입 돼지고기 수요가 커진 영향이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산 수입이 1년 전보다 31.2% 증가했다. 유럽연합(EU)산 수입은 2% 감소했다. 이에 대해 KREI는 "경기 침체에 따른 미국산 목전지 수요 증가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목전지는 돼지 목심과 앞다리 전지 부위를 함께 정형한 것으로, 수입 돼지고기의 판매 형태 중 하나다.

품목별로는 냉동 돼지고기와 냉동 삼겹살 수입량이 각각 13.7%, 20.6% 늘었다.

같은 상품을 최대한 알뜰하게 구매하려는 소비 형태도 커지고 있다. 편의점 GS25가 지난해 11월 시작한 '마감할인'이 대표적이다. 소비기한이 3시간~45분 남은 임박 상품을 최대 45% 저렴하게 판매하는 '떨이' 서비스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지난달 마감할인 매출은 4.5배 이상 늘었다.

패션업계에서도 명품은 고전을 면치 못하는 반면 중고 거래와 제조·유통 일괄(SPA) 시장은 활황이다. 명품을 판매하는 발란, 머스트잇, 트렌비를 비롯한 국내 온라인 플랫폼들은 명품 시장 침체로 지난해 매출이 두 자릿수 급감하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중고 명품 시장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4조원대에 불과했던 국내 시장 규모는 내년에 43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높은 가성비를 무기로 하는 SPA 브랜드는 젊은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 성장을 이어갔다. 무신사는 지난달 SPA 브랜드와 함께 할인 기획전을 진행한 결과 지난해 대비 브랜드 거래액이 2.5배가량 신장했다고 밝혔다. 고물가 상황에서 가격대가 합리적인 상품을 찾는 고객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은 것으로 해석된다.

[박홍주 기자 / 박동민 기자 / 서대현 기자 / 이희조 기자 /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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