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의대 증원보다 더 어설픈 상급종합병원 개편안
보건복지부가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중증 환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평균 40%를 웃도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의 의존도를 낮추고, 중증 환자 중심의 '3차 의료기관'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 과정을 마쳐야만 환자의 진료 권한을 부여하는 '개원면허제'도 고려하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법과 제도를 통째로 무시했던 의대 증원의 후유증에 허덕이고 있는 국민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꼼수다.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은 정부가 1990년대에 무분별하게 의대를 증설하면서 시작된 고질적인 비정상이다. 의대 정원을 확대한 정부가 '전문의' 양성에 필요한 '수련병원'의 확충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의사 양성 체계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무지가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뒤늦게 수련병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도 있었다. 2000년대 초의 의대 정원 351명 감축이 사실 지나치게 높아진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도였다. 2013년에는 인턴의 정원을 한꺼번에 358명(9.4%)이나 줄이는 '전공의 정원구조 합리화 정책'도 시행했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환자에게 고난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3차 의료기관'이면서 동시에 전문의를 양성하는 '수련병원'의 기능도 수행하는 이중적 역할을 한다. 실제로 2024년 신입 전공의 정원 3258명 중 70%인 2293명이 상급종합병원의 몫이었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대부분 의과대학 부속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는 일은 의대 증원보다 훨씬 더 어렵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수련받는 전공의 수를 무작정 줄일 수는 없다. 중증 환자의 진료보다 전공의 수련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의과대학부속병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공의 감축은 의과대학과 무관하게 운영되는 상급종합병원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대학부속병원에서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정반대로 전문의의 수를 더 늘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공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전공의를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로 대체하는 것도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이다. 전공의를 대체할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무시했다. 지역의료원과 지역 의대도 전문의 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는 형편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최저임금 수준의 전공의를 훨씬 더 높은 연봉의 전문의로 대체할 만큼 재정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전문의가 없는 의원급까지 포함한 '진료협력병원'에 전공의 수련을 맡기겠다는 구상도 전공의법에 맞지 않는 꼼수다.
의사면허가 없는 PA 간호사에게 전공의의 업무를 맡기는 것도 아직은 설익은 임시방편이다. 자칫하면 애먼 간호사에게 괜한 사법적 덤터기를 씌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 거부했던 간호법을 살려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의료계와의 충분한 숙의(熟議)를 통해 간호학과의 교육을 확실하게 개편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상급종합병원 개편안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카드보다 훨씬 더 허술하고 어설픈 것이다. 개편안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합리적 근거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편에 필요한 재정 지원에 대한 고민이 완전히 빠져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빅5의 개편에만 수조 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개편안은 흙탕물에 빠져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붕어를 화려한 미래의 청사진으로 설득하겠다는 '학철부어'(후轍부魚)식의 대안일 뿐이다.
보건복지부의 엉터리 개편안은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전공의를 제도적으로 압박하겠다는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전공의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정부 정책에 함부로 반발하면 의원급 병원조차 개원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리겠다는 겁박이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떠나버린 전공의에게 진로를 차단하고, 군대에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했던 보건복지부의 졸렬함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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