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검-경 ‘수사 뺑뺑이’ 연간 10만건… 수사 지체 이유 있었네

2024. 8.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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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수사권 조정·고소고발 반려제 폐지로 경찰 업무 과중
경찰 “쳐내기 수사가 현실…실체적 진실 파악 어려워”
사법 피해자 양산 中… 일부 경찰 ‘차라리 檢 지휘 받자’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동업자의 ‘배신’으로 1000억원대 피해를 본 A씨는 현재 수사 결과를 1년째 기다리고 있다. A씨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창궐 당시 방역 물품 수출 계약을 진행했는데, 추후 사실관계를 확인했더니 동업자가 동업자 본인 소유의 필리핀 법인으로 수출 계약 체결 주체를 바꾼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경찰-검찰-경찰 뺑뺑이를 돌며 1년째 수사 중이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인천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로 사건을 이첩했다가 올해 2월 불송치 결정(증거 없음)을 했다.

A씨는 단 20분 간 진행된 고소인 조사에서 경찰로부터 “이런 범죄는 폐쇄회로(CC)TV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수사하기 힘들다”, “계좌영장은 요새 법원에서 기각되는 경우가 많아서 신청하지 않았다”, “고소인이 제출한 계좌와 피의자가 제출한 계좌 내역이 상충되는 걸 알지만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A씨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 지시가 내려진 뒤 인천경찰청에서 다시 수사 중이다. A씨는 “수사는 미뤄지고, 수사를 받으러 가도 제대로 된 질문도 하지 않는 과정을 경험하며 이제 피의자의 범행보다 경찰의 수사 행태에 더 화가 난다”며 말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으로 이른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수사 지연과 수사 결과 불만족을 토로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경찰 수사과 내부에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고소·고발 반려제 폐지 등으로 업무 과중을 토로하며 “차라리 검찰의 지휘를 받고 싶다”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온다.

경찰-검찰-경찰 ‘수사 뺑뺑이’ 사건 연간 10만건…수사결과 불복한 이의신청 접수도 증가
연도별 검찰의 요구·요청(보완수사 요구·재수사 요청·시정조치 요구) 건수.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실·경찰청 제공]

12일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A씨의 사건처럼 경찰-검찰-경찰을 떠도는 이른바 ‘수사 뺑뺑이’ 사건은 연간 10만건이 넘는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재수사 요청, 시정 조치 요구 건수는 2021년 10만3472건에서 2022년 12만487건, 2023년 11만4662건에 달했다. 올해 7월까지는 6만9987건으로, 지난해의 61%에 달했다.

이 중에서 6개월 이상 된 장기 보유 사건은 연간 3만건 정도다. 2022년 12월 말 기준 장기 보유 사건은 4만4591건인데, 이 중 6개월을 초과한 건수는 30.7%(1만3681건)에 달했다. 2023년의 경우 3만2515건 중 3908건(12%), 2024년 7월 말 기준 2만5186건 중 2338건(9.3%)를 기록했다.

경찰청은 자료를 제출하며 “2022년 12월 말 대비 2024년 7월 말 보유 건수는 43.5% 감소, 그 중 6개월 초과 건수는 82.9% 감소하는 등 지표가 개선됐다”고 덧붙였지만, 사건을 단순히 ‘종결’시켰다고 고소·고발인들이 사법 시스템에서 느끼는 효용감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경찰의 불송치 결정(무혐의 종결)에 대해 이의 신청이 접수된 사기 사건은 2021년 2만5048건에서 지난해 3만9348건으로 2년 새 57% 증가했다. 경찰의 수사에 불복하는 경우가 되려 증가했다는 뜻이다.

B씨가 경찰 수사가 “억울하다”며 기자에게 보내온 문서. [B씨 제공]

올해 1월 서울 광진경찰서에 유사수신행위의규제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다단계 코인 투자 사건을 고발한 B씨 또한 접수 6개월 만에 경찰로부터 불송치(혐의없음)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B씨는 “피의자가 다단계 마케팅 방식의 보상플랜을 만들어 코인 투자 상품을 홍보하고, 투자자를 유치한 사실을 순순히 시인한다고 인정까지 했는데 어떻게 증거불충분 혐의없음이 나오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B씨는 “피해자만 96명, 피해 금액만 14억 이상인데 고소인 조사는 딱 2번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며 “지금도 수억원의 피해를 보고 건강도 못 챙기며 하루하루 비통하게 살고 있다”며 이의신청을 접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지방변호사회의 2023년도 사법경찰평가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고소·고발인들이 많았다. 문제 사례집에 따르면 “고소 이후 1년 가까이 피고소인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고소인 중 일부에 대해 취하를 종용하면 빠르게 처리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회유했다”, “제출한 증거와 의견서를 보지 않을 뿐 아니라 증거와 의견서를 받았는지 여부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헷갈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소장을 접수한지 17개월이 지났고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처분이 있은지 6개월이 경과하였음에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수사 지연 상황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피해 사례가 수록돼 있다.

경찰 “쳐내기 수사가 현실…실체적 진실 파악 어려워”…사법 피해자는 지금도 양산 중
[헤럴드DB]

경찰도 할 말은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증가하면서 수사관이 사건 하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렵고, 업무량 증가 등으로 고참 수사관들이 대거 이탈하며 수사를 지휘할 역량 있는 수사관 부족으로 사건 처리 기간 증가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선서 수사과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수사개시 범위가 늘어나고 보완수사요구, 재수사요청 등 추가 절차가 생겨나면서 업무량이 증가했다”며 “같은 인력으로 늘어난 업무를 처리하기 힘들어져 고참 수사관들은 대거 탈출하고 그 자리를 신임 수사관이 채우고, 그 신임수사관도 얼마 가지 못해 탈출하는 쳇바퀴가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수사준칙 개정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거나 민사사안에 해당하는 사건들도 의무적으로 접수해서 처리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수사관 1인당 보유 건수가 폭증했고 기존 수사관 탈출-신임 수사관 배치-수사관 탈출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또 “편차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한 달에 15~30건을 배당 받는데 사실상 쳐내기 수사하는 것이 현실이고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너무나 어렵다”고 했다.

전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장 출신인 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변호사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사가 책임지고 사건을 수사하는 구조가 없어지면서 사법 제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태로 변해버렸다”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아 아쉬울 때도 있고, 사건처리는 지연되면서 국민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사법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피해 보는 고소인도, 억울하게 피의자로 몰려있는 사법 피해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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