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약자보호법 속도 내는 정부… 노조 "노란봉투법 시행이 먼저"
표준계약서 작성·육아휴직 활성화 등 건의
내달 대구 부산 광주서도 권역별 원탁회의
정부가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가칭·노동약자보호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 소규모 사업장 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관계법이나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행사를 전국적으로 진행하며 법안 및 관련 정책 입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공포하거나 근로기준법을 영세기업까지 전면 시행하는 등 노동약자의 노동권을 강화하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는 입장이다.
12일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은 서울 구로구 소재 근로자 이음센터에서 '노동약자 원탁회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 "노동약자를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며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을 약속한 것을 계기로, 노사발전재단이 권역별로 노동약자를 모집해 현장의 애로점과 건의사항을 논의하는 원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 경기 수원, 인천, 대전에서 회의가 열렸고 다음 달 대구, 부산, 광주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노동약자 보호책 건의 봇물
이날 행사는 4개 권역 원탁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발표하고 회의에 참석했던 노동자와 전문가들이 간담회를 갖는 자리였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375명의 노동자가 원탁회의에 참여했고 연령대는 20~60대로 다양했다.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들은 업종별 표준계약서 마련과 프리랜서 경력관리 시스템, 플랫폼 종사자 휴게실 마련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에서 도심재생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프리랜서는 간담회에서 "계약 관련 분쟁 조정과 법률 지원 등을 건의하고 싶다"며 "원탁회의 내용이 꼭 정책에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은 연장수당 미지급 문제 해결, 육아휴직 사용 활성화,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했다. 기간제·파견 업종은 정부의 사업주 감독 강화와 비정규직 복지 차별 해소를 건의했다. 중장년 근로자에 대한 전직 지원 강화와 사업주 대상 노동법 교육 강화 요청도 있었다.
정부는 원탁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노동약자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토대로 노동약자보호법 제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원탁회의에 참여해온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용 불안, 계약 관련 분쟁 등 현실적 고충에 대한 해결 방안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노총 "노란봉투법이 근본책"
노조는 "노란봉투법 시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노동약자보호법이 노동약자에 대한 폭넓은 보호 대책을 담고는 있지만 노동자 보호의 근본적 해법은 아니라는 비판이다. 노동약자보호법이 자칫 노동자를 약자와 강자로 편가르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실제 노동약자보호법과 노란봉투법은 노동약자 보호에 대한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다. 정부 방침과 원탁회의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노동약자보호법은 노동약자들이 공제회를 통해 스스로 질병·상해 등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이 직접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노동약자보호법은 임금 미지급과 차별대우에 대한 정부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노란봉투법은 하청·협력업체 노조와 원청업체가 근로조건 등을 직접 교섭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뒀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원탁회의에서 나온 내용 대부분은 노조가 주장해온 사항"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답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하청 노동자도 본청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란봉투법은 거부하면서 노동약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노동약자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노란봉투법을 통한 노조할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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